살아온 / 사는 / 살아갈 이야기

나의 세종 입성기

by 꿈강

1989년부터 살아온 충주를 떠나 2023년 7월 20일에 세종으로 이사했다. 따져보니 34년을 충주에서 살았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고향이라 할 만한 곳이다. 글을 쓰는 때가 8월 2일이니, 세종으로 온 지도 2주가 되었다. 처제가 와서 짐 정리를 같이 해 주어서 짐 정리도 거의 다 되었다. 처제가 가히 짐 정리의 달인 수준이라 처제의 지휘 아래 짐 정리에 일로매진한 결과이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소소하게 정리해야 할 것들이 좀 남아 있다. 그러나 이사 온 날, 짐을 집에 올려놓았을 때의 그 난장판과 비교하면 거의 천지개벽 수준이다. 이제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삶의 터전을 바꿀 결심을 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딸네가 세종에 살고 있는데, 딸과 사위가 모두 직장에 다니는 터라 손녀딸 육아가 문제였다. 딸과 사위가 육아 휴직을 번갈아 하며 이제까지는 어찌어찌 버텼는데, 내년부터는 어쩔 도리가 없게 되었다. 우리가 딸네 곁으로 와서, 손녀딸을 봐주지 않으면 손녀딸을 돌보아 줄 사람을 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 끝에 충주를 떠나 세종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손녀딸 돌보아주러 세종으로 이사한다고 했더니, 뭐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제 나이 예순하나인데 자신의 인생을 즐기며 살아야지, 손녀딸 돌보려고 삶터까지 바꾸냐는 이야기였다. 아이는 부모가 알아서 키우는 거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도와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물론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손녀딸을 남의 손에 맡길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딸네 곁으로 삶터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때가 대략 2022년 4, 5월경. 옮길 결심을 했으니 세종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던 세종의 집값이 급전직하 중이었다. 얼마다 다행이던지!


딸과 사위가 딸네 집 근처에 매물로 나온 아파트 몇 채를 알아보고는, 우리 부부와 함께 가 보자고 했다. 서너 채를 둘러보았는데 아내의 마음에 든 집이 한 채 있었다. 딸네 집에서 차로 약 7분 거리에 있는 집이었다. 문제는 가격. 세종 집값이 급락하고 있기는 해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다.


이때 사위의 맹활약이 시작되었다. 부동산 중개사에게 매매 가격보다 1억 원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이 가격이면 바로 계약하겠다고 제안했다. 일주일 정도 지난 뒤, 부동산 중개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주인이, 우리가 제시한 가격에서 2천만 원만 더 내면 집을 팔겠다고 했다는 소식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계약했다.


세종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니, 이제 충주 집을 팔아야 할 차례였다. 충주는 부동산 경기가 썩 좋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집 내놓은 지 약 5개월 만인, 2023년 3월에 적정한 가격으로 집을 팔 수 있었다. 게다가 집을 산 분이, 우리의 사정을 고려하여 중도금도 넉넉히 지불해 주고 이사 오는 날짜도 조정해 주어 정말 순조롭게 세종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우리의 세종 집은 소위 숲세권 아파트이다. 숲세권은 달리 말하면 '도심에서 먼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상가가 좀 멀리 있고 학원과 학교 등도 좀 거리가 있는 편이다. 젊은 사람들이 살기에는 불편할 터이지만, 우리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살기에는 아주 좋다.


아파트 단지의 동쪽, 서쪽, 북쪽이 숲에 닿아 있다. 아파트 단지가 숲에 폭 안긴 형국이다. 단지 내 조경도 퍽 훌륭하다. 밤이 되면, 거실 창으로 환한 달을 아주 잘 볼 수 있다. 화룡점정은 아파트 단지와 숲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바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연을 느끼며 느리게 살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 내 마음에 딱 드는 곳이다.


세종을 방문할 때마다 자동차 운전하기에 참 불편하다고 느꼈다. 이사 후 운전을 해 보니, 더욱 그렇다. 과속 방지턱은 어마어마하게 높고 대부분의 시내 도로는 제한 속도가 시속 50km. 제한 속도 시속 30km인 곳도 수없이 많다.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가 세종을 방문하고 나서, 세종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자동차 운전하기가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만일 그 동료의 말이 맞다면 세종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되는 도시가 아니라 자동차가 살 곳이 못 되는 도시라고 해야 마땅하리라. 자동차 운전하기는 불편하고 사람이 걸어 다니기에는 편안한 도시가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가 아니겠는가. 거의 자동차로 이동하다 보니 자칫 자동차 운전하기가 불편하면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가해 보면, 사람들이 걷기 좋은 곳이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동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이제 나의 세종에서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인생 2막이 펼쳐진다. 아내와 딸과 사위와 손녀딸과 함께하는 삶이다. 무의미하지 않게 느리지만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천천히 생각해 보련다. 조급한 마음을 가질 까닭은 추호도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고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들을 웃게 만들 수만 있다면 썩 괜찮은 삶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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