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고등학교 시험 문제, 좀 더 잘 내려면...

by 꿈강

수업을 하고 평가를 한 다음 그 과정과 결과를 생활기록부에 기록한다.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 활동의 핵심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단어 수준으로 줄이면 수업, 평가,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모두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가 이야기를 해 보자. 일반계 고등학교의 평가는 지필 평가와 수행 평가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대개의 교과목은 지필 평가와 수행 평가를 모두 실하여야 한다. 다만 실기 비중이 높은 교과목과 진로 선택 과목 등은 수행 평가만 실시할 수 있다.


지필 평가는 연필이나 펜으로 종이에 답을 쓰는 형식의 평가를 일컫는 말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와 같은 일제식 정기 시험이 여기에 속한다. 수행평가는 학생의 학습 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직접 관찰하여 그 관찰 결과를 판단하는 평가를 일컫는 말이다.


지필 평가 성적과 수행 평가 성적을 합산하여 한 학생의 해당 학기 최종 성적을 산출하게 된다. 이 성적이 소위 말하는 내신 성적이다. 대학 입시 전형에서 내신 성적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모든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각 과목에서 1등급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고등학교 3년 동안의 내신 성적 평균이 1.00에 가깝게 수렴하면 상위권 대학 진학의 첫 단추를 잘 꿰었다고 할 수 있다. 학생부 교과 전형으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각 대학에서 설정해 놓은 수능 최저 기준을 통과해야 하지만 말이다. 내신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수능 성적을 위주로 선발하는 정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지만, 수능을 잘 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지방 중소 도시의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더욱 그러하다.


내가 근무했던 지역은 3년 전까지만 해도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었다. 학교 간 성적 위계가 뚜렷했다. 평준화가 된 지금도 그런 경향이 여전하다. 물론 많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내가 근무했던 지역에 있는 네 개의 일반계 고등학교를 A고, B고, C고, D고라 하고 A고가 가장 성적이 뛰어나고 D고가 가장 성적이 뒤처지는 학교라고 해 보자.


이 경우 A고에서 내신 성적 1.00을 받은 학생과 D고에서 내신 성적 1.00을 받은 학생의 실력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35년 동안 교직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A, B, C, D고 모두에서 근무했다. A고에서 근무할 때는 어떻게 하면 시험 문제를 어렵게 낼까를 고민했고, D고에서 근무할 때는 어떻게 하면 쉽게 낼까를 고민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A고에서 시험 문제를 쉽게 냈다가는 100점 만점을 받은 학생이 쏟아져 1등급이 없어지는 대참사가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컸다. D고에서 시험 문제를 어렵게 냈다가는 시험 성적 평균이 30점 내외를 맴도는 민망한 경우가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다.


그러다 보니 D고의 시험 문제는 거의 모든 과목이 쉬워도 너무 쉬웠다. 기억에 남는 가장 쉬운 문제는 바로 이랬다. 그 당시 내가 시험 문제를 검토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과목명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아마 '영미 문학 강독'인 듯하다.


'이번 학기에 우리가 배운 소설의 제목은?'


문제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또렷하게 기억한다. 영어 문제답게 선택지 다섯 개는 모두 영어로 제시되어 있었다. 왜 문제를 이렇게 냈는지 몹시 궁금했다. 문제를 고치라고 요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같은 평교사로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평가 담당 부장 교사와 교감에게 이야기했다.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어서 문제의 적합성 여부를 따져보자고 했다.


생각을 해 보겠다고 한 교감은, 다음 날 평가 담당 부장 교사와 나를 불러 그대로 내버려 두자고 했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담당 교사가 출제한 문제를 고치라고 하기가 좀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가 관리 총책임을 맡은 교감이 그렇게 말하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하릴없이 가만히 있을밖에.


앞서 예를 든 시험 문제는 좀 극단적이기는 하다. 그 D고의 시험 문제 모두가 그 지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매우 쉬웠다. 그러다 보니 그 D고의 학생 몇몇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매우 훌륭한 내신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학교생활기록부 특기사항 기록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에 매진할 수 있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성공적으로 진학했다.


대학에 성공적으로 진학한 그 D고의 학생들이 잘못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 학생들은 전략적으로 A고가 아니라 D고로 진학했을 터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현명하게 자신이 다닐 고등학교를 선택했고 성실하게 고교 생활을 해서 대학 진학에 멋지게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왜 그 D고에 제대로 된 시험 문제를 출제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냐는 점이다. 비단 D고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근무한 A, B, C고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옳다.


내가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을 때는 사실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몰랐다. 그냥 어렴풋이 '그래도 되나? 이러면 안 되지 않나?' 정도의 생각뿐이었던 듯싶다. 교직에서 물러나는 즈음에 그때 일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니, 시험 문제 적정성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것은 정말로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깨달았다.


지금은 D고를 떠나 C고에서 퇴직을 기다리고 있다. 평가 담당 교사가 아니라 C고의 평가 관리 체계가 어떤지 정확하게 잘 알 수는 없지만 D고보다 획기적으로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평가 담당 부서에서 전하는 메시지들을 보면 알맹이는 내버려 두고 변죽만 울리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그렇다.


해결방안은 없을까? 가장 중요한 건 교사들의 인식이다. 시험 문제를 제대로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교사 개인 개인이 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인식을, 정신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리고 시험 문제의 적정성을 담보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교과협의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교과협의회에서 해당 교과 각 과목의 시험 문제를 반드시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내가 근무한 지역 고등학교에서는 이 부분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목 담당 교사가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과목 담당 교사들끼리 검토한 뒤 평가 담당 부서로 제출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과목 담당 교사가 한 명뿐이라면, 오롯이 그 한 명이 출제하고 검토한 뒤, 평가 담당 부서로 제출한다. 평가 담당 부서에서 시험 문제를 검토하지만 주로 형식적인 부분에 그치고 만다. 다른 교과 시험 문제의 적정성을 판단하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교과협의회에서 반드시 시험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같은 교과의 시험 문제이므로 내용 측면의 적정성을 얼마든지 판단할 수 있다. 시험 문제를 반드시 교과협의회에서 검토하도록 제도화한다면 고등학교 시험 문제의 질은 괄목상대하리라고 확신한다.


교과협의회의 검토가 실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학교에 근무하면서 계획은 그럴듯하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수많은 시스템들을 보아 왔기에 하는 말이다. 교과협의회에서 검토했다며 교사들의 서명만 받고 그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조금이나마 교과협의회에서 실제로 시험 문제를 검토하게 하려면, 시험 문제를 검토할 시간과 공간 확보가 중요하다. 각 교과별로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주고 시험 문제를 검토하도록 하면 실제적인 검토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교과협의회에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줄만 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고등학교 내신 성적이 대학 진학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동하므로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제대로 된 시험 문제로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어느 고등학교에도 교과협의회가 조직되어 있을 텐데, 아마도 대부분은 유명무실할 것이다. 만일 교과협의회에서 시험 문제를 실질적으로 검토하여 시험 문제의 질을 향상한다면 교과협의회가 활성화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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