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에 교직생활을 시작해서 2023년 8월에 퇴임했다. 34년의 여정을 큰 탈 없이 마쳤다. 고마울 따름이다. 특히 요즘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좋은 학생들과 좋은 학부모들을 만났기에 험한 꼴 겪지 않고 퇴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교직생활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수업'이라고 대답하겠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수업을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 학교 분위기'라고. 내가 우리나라 모든 학교의 분위기를 다 알고 있지는 않으니, 내가 근무한 학교에 국한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우선 전제해야겠다. 또 나는 34년 교직생활 동안 딱 2년을 빼고 지방 중소도시의 일반계(예전에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했다는 점도 밝힌다.
교직에 발을 들인 뒤부터 10년 동안은, 지금 생각해 보면, 수업은 뒷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면 뭐가 우선이냐고? 교육청에 보고할 공문 처리가 우선이었다. 교육청에 보고할 공문 작성하느라 수업에 늦게 들어가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 보고 공문과 관련한 교육청 장학사의 전화에 응대하기 위해 수업 도중 교실을 나와야 하는 경우도 제법 많았다. 장학사와 통화를 끝낸 뒤, '뭐 이만한 일로 수업하는 교사를 불러내지?'라는 생각에 정말 어처구니없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학교 분위기가 그랬다. 수업 잘하는 것보다 공문 처리 똑 부러지게 하는 게 훨씬 중요했다. 그래야 유능한 교사였다. 그땐 그랬다.
2000년대로 접어들자, 그런 정도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수업 중 불려 나와 장학사 전화에 응대해야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공문 처리가 수업보다 중요했다. 교직 경력 10년이 조금 지난 나는, 행정 업무를 이것저것 많이 맡고 있었다. 공문 처리를 빈틈없이 한다는, 유능한 교사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약간 과장하면 공문 처리하다가 잠깐 짬 내어 수업하러 가는 형국이었다. 또 급하게 처리해야 할 공문이 갑자기 내려오면, 학생들 자습하게 하고 공문 처리에 매진했다. 교장이나 교감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때 나는 동료 교사들에게 '우리는 언제쯤 수업으로 평가받을까?'라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공문 처리 잘해서 유능한 교사로 평가받고 있었던 터이지만 늘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때도 여전히 그랬다. 학교에서, 교사들 사이에서 '수업'이 중심 화제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10년이 흘러, 2010년대가 되자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공문 처리가 절대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우선시해야 하는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예전에는 공문 보고 기일을 놓치면 장학사의 불호령을 듣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장학사의 연락을 받으면, 죄송하다며 바로 처리하겠다고 이야기하면 대개의 경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수업'이 교사들의 중심 화제는 되지 못했다. 가끔 수업의 중요성에 이야기하는 교장이나 교감이 있었으나 말뿐이었고, 교사들이 수업이 중요하다고 여길 만한 정책들을 시행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2015년부터 '수업'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이미 다양한 학생 활동 중심 수업이 있었다. 그때까지 내가 해 왔던 교사 주도의 일제식 강의 수업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학생 중심 수업 중, 내가 잘할 수 있을 듯한 수업 방식이 하브루타 수업이었다. 그래서 하브루타 수업에 대해 책을 통해 공부한 다음, 2016년에 처음으로 하브루타 수업을 시도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해 나 혼자 3학년 화법과 작문 과목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다른 교사와 함께 그 과목을 가르쳤다면, 내 방식대로 수업을 할 수 없었을 터였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어찌어찌 수업을 이끌어 갔다. 2017년에도 나 혼자 3학년 화법과 작문 수업을 하게 되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1년 동안 하브루타 수업을 진행했다. 하브루타 수업 2년 차가 되자,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난해보다는 훨씬 매끄럽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2년 차 수업을 마치자, 어느 정도 하브루타 수업에 자신이 생겼다.
2018년에 1학년 국어 과목을 가르치게 되었다. 나 포함해서 세 명이 세 반씩 나누어 가르쳐야 했다. 교사 세 명이 모여 회의를 했다. 나는 학생 중심 수업인 하브루타 수업, 교사 A는 교사 주도 수업, 교사 B 는 학생 중심 수업과 교사 주도 수업을 반반 섞어 수업하기로 했다. 평가가 문제였는데, 평가 문항을 최대한 수능식으로 출제하기로 합의하여 해결했다. '수능식'이란 배경지식 없이도 주어진 지문을 통해 정답을 추론할 수 있는 형태를 말한다. 그해 정말로 신나게, 즐겁게 하브루타 수업을 했다. 1학년들이라 입시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해서, 더욱 재미있게 수업을 한 듯하다. 내 교직생활 중, 최고의 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 할 수 있다. 2018년 이후 퇴직할 때까지 하브루타 수업을 했다. 어떤 한 해는 학생들이 하브루타 수업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해를 빼면 매우 즐겁게 수업하다가 퇴직했다.
하여, 나의 진짜배기 교직생활을 2018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가르치는 재미, 수업의 재미를 온전히 느끼며 교직생활을 한 것은 2018년부터이다. 이렇게 측면에서 생각하면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수업'이다. '수업하면서 느끼는 재미'이다.
지금 교직에 있는 모든 교사들이 자신들의 수업에서 재미를 느끼기를 바란다. 그래야 학교생활이 즐거워진다. 그렇게 되면 학교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교사 개개인의 노력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교의 분위기이다. '수업'을 학교에서 제일 중요한 일로 떠받쳐 올려야 한다.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재미있게, 잘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공부하고 고민하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로 평가받을 수 있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근무할 때에는 행정 업무를 똑 부러지게 처리하는 교사, 대학 진학 실적이 좋은 교사, 학생 생활지도를 잘하는 교사 등이 유능한 교사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이 수업 잘하는 것 아니겠는가. 교사가 수업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다는 말인가.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이제까지 학교에서는 이 당연한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 이제 '수업'을 학교의 중심에 두자. 물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학교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도 많을 것이다. 내가 근무했던 여러 학교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시, '수업'을 학교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수업 잘하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로 평가받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외친다. 그러면 학교가 바뀌고, 지금 현재 학교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해결될 실마리가 보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