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3을 손으로 표현해 보세요.

Oct 30. 2025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나치의 본거지에 잠입한 영국인 스파이, 그는 술 세 잔을 주문하면서 손가락으로 숫자 ‘3’을 내보인다. 하지만 그가 익숙하게 펼친 손 모양은 영국식이었다. 독일식 표현은 엄지–검지–중지를 드는 것이고, 영국식은 검지–중지–약지를 펴 올리는 것인데, 그는 무심결에 영국식 ‘3’을 드러냈다. 그 작은 습관 하나로 그의 정체가 발각되고 만 것이다.

영국식 숫자 3을 보이는 남자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얼마나 인상 깊던지, 언젠가 다양한 외국인들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다. “너희 나라에서는 숫자 3을 손가락으로 어떻게 표현하니?”라고. 호주에 와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이 질문을 실제로 꺼내놓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헝가리인 앤디와 호주인 친구에게 동시에 부탁해 보았다.

“숫자 3을 손가락으로 표현해 주세요.”

앤디는 독일식으로, 호주 친구는 영국식으로 3을 내보였다. 앤디는 호주 친구의 손을 뚫어져라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약지를 들어 올리면 새끼손가락이 당기고 불편하지 않냐면서, 어떻게 저렇게 숫자를 세냐고 놀라워했다. 여기까진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더욱 깜짝 놀라게 한 건 남미식 표현법이었다. 콜롬비아와 칠레인 친구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그들은 중지–약지–새끼를 펴서 ‘3’을 만들었다.

“이봐! 그건 숫자 3이 아니라 ‘오케이’ 혹은 ‘돈’이라는 뜻이잖아!”

내가 놀라서 호들갑을 떠니, 콜롬비아 친구는 오히려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야? 우리에겐 이게 숫자 3인데?”

선택지가 두 개인 객관식 문제에 주관식 답이 나와 당황한 나를 보며 콜롬비아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더 놀라운 건 그 친구가 나에게 살사를 가르쳐주며 “원, 투, 쓰리”를 외칠 때조차도, 새끼–약지–중지 순으로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숫자를 세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에겐 ‘새끼손가락이 먼저’가 당연한 방식이었다. ‘숫자 3’ 외에 ‘수를 세는 방식’에서도 나라별로 다른 차이점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앤디가 수를 세는 방식도 나와 다르다는 걸 발견한 날이 있었다.

“앤디, 내가 호주에 온 지 얼마나 됐지? 1개월, 2개월, 3개월...”

내가 손을 다 편 상태에서 엄지부터 하나씩 접어간 반면 앤디는 정반대로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부터 하나씩 펴 올리고 있었다.

“너는 왜 손을 하나씩 접고 있는 거야?”

“그러는 넌 왜 굳이 주먹을 쥐었다가 펴는 건데?”

사소한 차이에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음이 터졌다. 내겐 너무나 당연한 방식이 그녀에겐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숫자 세는 사소한 제스처마저 나라마다 다르다는 사실이 내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 다른 재밌는 문화 차이는 재채기를 할 때에도 발견되었다. 비염이 있는 나는 일상에서 재채기를 자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앤디는 꼭 “Bless you!”라고 외쳤다. 왜 갑자기 날 축복한다는 거지? 한국에선 기껏해야 “입 좀 가리고 해.” 정도의 반응이 나오는 재채기 아니던가.

“앤디, 근데 내가 재채기할 때마다 왜 날 축복하는 거야?”

“그럼 너희는 아무 말도 안 해?”

“우린 재채기할 때 침이 튈까 봐 걱정하는 거 말곤 신경 쓰는 게 없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서양권에서는 재채기를 하면 영혼이 몸 밖으로 나온다고 믿는 미신이 있어서 “Bless you!”라고 말해 줌으로써 영혼이 나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설명을 듣고 나니, 그 단순한 말속에 나름의 따뜻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