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 탐험가 Jun 05. 2022

해피 히피 헝가리 언니 앤디



내가 호주에 여행을 왔을 때 처음 만나 호주를 떠나는 날까지 내 곁을 지켜준, 나의 에어비앤비 호스트이자 룸메이트, 그리고 이젠 정말 좋은 친구가 된 앤디.


히피 스타일의 헝가리 여자와 전형적인 한국 도시 여자인 내가 도대체 친해질 일이 뭐가 있을까 싶은데, 우리는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고 급속도로 친해졌다. 국적도, 사용하는 언어도, 외형도 완전히 다르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꽤나 많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나는 사주를 즐겨보고 그녀는 타로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앤디는 종교는 없지만 만물을 관장하는 우주의 기운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앤디는 간절히 원하는 바를 항상 ‘Universe’를 향해 염원하곤 했다. 예전에 우리가 함께 섬으로 여행을 갔다가 반 고립 상태가 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녀는 달을 보면서 진심 어린 기도를 올렸다.


“유니버스- 제발 저에게 배가 있는 누군가를 보내주세요. 우리를 도와주세요.”


옆에서 멀뚱히 걱정만 하는 나를 보고 앤디는 진지하게 얘기했다.


“지, 뭐해? 너도 빨리 진심을 다해 우주에게 빌어봐.”


뭐 도대체 이게 통하기나 하겠냐 만은 나 역시 달빛을 향해 기도했다.


“유니버스, 제발...!! 누가 와서 우리 좀 데려다줘!! 이참에 당신의 능력을 증명해줘요!!”


그리고 실제로 30분도 안 되어서 거짓말처럼 배가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를 육지까지 데려다주었다. 가끔 이런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서 더 그런 것 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기도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니버스를 향한다.


진심으로 염원하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다는 진리를 믿는 그녀가 유니버스를 향해 가장 간절히 기도하는 것 중 하나는 ‘진실한 사랑’에 대한 요청이다. 인생에 큰 욕심이 없는 앤디이지만 그녀가 유일하고 바라고 소망하는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따뜻한 바닷가 마을에 살면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다.


“유니버스, 제발 저에게 진실한 사람을 보내주세요.”


그녀의 진심 어린 기도에, 내 코가 석자인 나 역시 앤디가 진심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랐다. 그리고 내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나 역시 그녀에게 주문 아닌 주문을 걸었다.


“앤디, 내가 돌아오는 3월까지는 반드시 남자 친구가 생길 거야!”


그리고 실제로 내가 한 주문이 먹혀든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우주의 기운이 그녀를 도와준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호주에 도착하기 일주일 전에 앤디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일주일 만에 사랑에 빠져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앤디의 집에 도착한 3월엔 이미 그녀의 새로운 남자 친구 스캇이 그녀와 함께 있었다.


“안녕 지, 네 얘기 많이 들었어. 어서 들어와.”


내가 앤디의 집 문을 열었을 때 스캇은, 그녀와 만난 지 고작 일주일밖에 안 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앤디의 바깥양반인 양 나를 맞이해 주었다.


스캇은 긴 머리에 바짝 마른 체구를 지닌, 캠핑 밴에 사는 전형적인 히피 스타일의 남자였다. 긴 머리를 지닌 예수님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고, 골드코스트에서는 꽤나 흔한 캠핑 밴 족(族)을 동경하는 앤디가 딱 원하는 스타일의 남자였으니, 그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앤디가 늘 도전하고 싶어 했던 비건식을 아주 엄격하게 실천하는 남자이기도 하고.


그날 저녁, 스캇은 직접 요리를 하여 나에게 저녁을 대접했고, 식사를 하면서 스캇은 앤디에게 진심으로 빠져들었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그 남자가 진심인 것인지,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은 맞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녀의 소원대로 예수님 스타일의 비건인 남자가 그녀 앞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 이건 우주가 보내준 마법이야.”


그래, 그건 분명 마법이 맞았다. 일주일 전엔 어디서 뭘 하는지 존재조차도 몰랐던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마법이란 말인가. 소설이나 영화 속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은 늘 로맨틱하고 극적으로 느껴졌지만, 현실에서 ‘첫눈에 반했다’며 막무가내로 만난 지 일주일 된 여자의 집에서 요리를 하고 손님맞이를 하는 남자의 행동은 깊은 의심만을 낳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콩깍지가 쓰인 앤디의 눈엔 애정이 뚝뚝 넘쳐흘렀고, 그녀를 바라보는 나 혼자만이 묘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캠핑 밴에 살기 때문에 잠자리가 편치 않은 스캇은 앤디의 집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묵기 시작하였다. 과연, 이 남자는 앤디가 그토록 찾던 ‘진실한 사람’이 맞는 것일까...?

예기치 않은 의문의 남자 플랫 메이트가 생긴 나는  상황이 난감하기만 한데...


유니버스, 이번엔 너무 섣부르게 그녀의 염원을 들어준 것 아닌가요...?

이전 03화 25인치 캐리어에 1년의 인생을 담아 돌아오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