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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탐험가 Jun 03. 2022

25인치 캐리어에 1년의 인생을 담아 돌아오다.


 

1월 중순 즈음 한국으로 들어온 나. 3개월의 휴직 기간 중 이제 막 한 달을 조금 넘게 사용한 상황이었지만, 난 3개월 후 복직을 할 것이라는 회사의 기대를 저버린 채 퇴사를 선택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는 시점이었고, 4년 가까이를 다닌 회사의 시스템이 개선되어가고 주식 상장의 호재를 눈앞에 둔 상황이었기에 주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회사 대표님은 내게 이 시점에 회사를 관두면 언젠가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회사의 새로운 사업부의 초창기 멤버로서 꽤 오랜 시간 고생을 해왔기에, 많은 호재를 앞둔 상황에서 퇴사를 하는 것이 ‘객관적’으로는 옳은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인생은 나의 ‘주관적’ 선택에 따라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내가 지금 나의 인생에서 가장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오로지 나만이 알 수 있는 거니까. 오히려 내가 내린 결정을 뒤집으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금전적 여유가 있어서도, 내 삶을 새롭게 개척해나갈 커다란 용기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더 늦기 전에, 내가 더 아프기 전에 내 곁에 찾아온 평화와 행복의 시간을 간절히 붙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시간은 지난 8년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 온 과거의 내가, 잔뜩 지쳐있는 현재의 나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았기에 더더욱 놓칠 수 없었다.


결국 용기인지 만용인지 모를 선택 속에서 2월 내내 급히 인수인계를 마치고 비자를 신청한 후, 3월 중순에 맞추어 호주로 돌아갈 티켓을 구매했다. 하지만 그즈음 갑작스럽게 시작된 코로나의 습격. 2월 말 즈음, 출국이 아직 보름도 넘게 남은 상황에서 몇몇 국가들이 한국인 입국 금지령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하아.. 나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평범한 월급쟁이에겐, 아니 이제 백수가 될 나에겐 1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비행 스케줄을 앞당기는 것이 꽤나 고민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좋지 않은 예감에 결국 마지막 출근 이틀 후 바로 출국을 하는 것으로 스케줄을 변경하였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은 빨리 해결해버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2월 28일, 마지막 출근을 한 후 나는 하루 만에 짐 싸기에 돌입하였다.


퇴사 다음 날 급하게 하루 만에 짐을 싸고 나니 나의 짐 가방은 고작 25인치 캐리어 하나와 작은 배낭 하나가 전부였다. 1년 이상의 어학연수나 유학 따위를 한다고 하면 남들은 이민 가방이나 문짝만 한 캐리어를 사곤 하는데. 난 내가 유럽 여행을 갈 때마다 들고 다니던 25인치 캐리어 하나에 필수적인 물건들만을 챙겼다. (대신 가방이 터질 것 같아서 엉덩이로 깔아뭉갤 때에만이 캐리어 지퍼를 잠글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25인치 가방 안엔 내 인생의 전부가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이 가방 하나만 갖고도 1년을 다 살아낼 수 있는데, 그간 한국에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짐과 잡동사니들을 끌어안고 살았는지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옷이 빼곡히 들어찬 옷장을 볼 때면, 작년까진 마치 벌거벗고 다녔던 것 마냥 입을 옷이 하나도 없고. 화장대나 책상 서랍 속엔 무엇이 들어있는지 기억도 안 나서 중복되는 물건들이 가득하기만 한데, 살면서 얼마나 많은 부질없는 것들을 끌어안고 지냈는지가 새삼 피부로 와닿았다. 호주에서 1년을 살든 2년을 살든 나의 ‘삶’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고작 25인치 캐리어 한 짐만큼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게 퇴사 한 지 이틀 만에 하나의 캐리어에 1년짜리 인생을 담아 넣고 호주에 돌아온 나, 처음 호주에 왔던 그날처럼 달큰한 꽃향기를 맡으며 앤디의 집에 도착을 했다. 커다란 해바라기 꽃이 그려진 시원한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앤디가 한 달여 만에 돌아온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해주었다.


다시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앤디

“Welcome back, Ji!!!”


인생에서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며 살던 내가, 두어 달 전만 해도 어디에 붙어있는 어떤 도시인 줄도 모르던 골드코스트에 살기 위해서 즉흥적이고도 갑작스럽게 이렇게 다시 돌아왔다.


한편, 내가 앤디의 환대를 받으며 호주에 도착이틀  호주 정부는 한국인 입국 금지를 내렸다. 더불어 내가 최초에 구매한 티켓의 출국일이 되기도 전에 호주 정부는  세계 국가를 상대로 국경을 봉쇄해버렸다. 역시 촉이 좋지 않을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대로 일을 저질러야만 한다.   10 원이 아까워 비행기 스케줄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지금  자리에서  글을  일조차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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