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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탐험가 Jun 03. 2022

여행지에서 '아윌 비 백'을 외치다!



1년 중 가장 바쁜 극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시즌에 뒤늦게 예약을 한 탓에 호텔 잡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겨우 예약한 호텔은 그 마저도 번화가에서 한참 떨어진 1박에 20만 원짜리 3성급 호텔이었다. 아무리 날 위한 선물이라지만, 혼자서 1박에 20만 원은 부담스러운 금액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금빛 해변’을 향해 떠난 여행인데 나의 호텔은 해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결국 누군가의 취소표를 기다리며 며칠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끝없는 새로고침의 파티를 벌인 끝에, 호텔 가격의 1/3에 해당하는 해변 바로 앞에 위치한 에어비앤비를 발견했다!


여자 호스트와 함께 지내는 숙소였기에 그에 따른 불편함이 다소 우려가 됐지만, 가격과 위치가 너무나 완벽했다. 고민 없이 바로 예약을 걸고 호스트에게 확답을 받았다. 다소 낡았지만 아늑하다는 리뷰가 주를 잇는 인상 좋은 호스트의 집. 무언가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찾아온 크리스마스. 드디어 호주에 도착했다. 추운 한국과는 달리 호주는 무척 더웠다, 그래서 좋았다. 힘들게 숙소를 찾아갔고, 낡은 2층짜리 건물의 지층에 위치한 달콤한 꽃내음이 풍기는 작은 집 안으로 들어섰다. 텔레비전에선 크리스마스 시즌에 시작된, 거대한 해양에서 펼쳐지는 보트 경기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직접 구운 진저 쿠키로 나를 맞이한 집주인 언니는 헝가리에서 온 안드레아라고 했다. 줄여서 앤디라고 불러달라고. 나의 이름을 물은 앤디에게 내가 ‘아임 지영’이라고 하자 앤디는 날 ‘지’라고 불러도 되냐고 했다. ‘지..?’ 뭔가 좀 이상하지만 대안도 없고 영어가 짧아 그냥 ‘예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때 앤디의 집에서 발견한 나의 이름. 앤디가 집을 꾸미기 위해 벽에 걸어둔 데코레이션용 깃발 속에 ‘애(愛). 안(安). 영(英). 지(智). 평(平). 복(福).’이 한자로 써져있었다. 깃발 속의 ‘지’와 ‘영’이 내 이름의 한자와 완전히 일치했다. 평소 운명 따위를 믿는 나는 그 깃발을 본 순간 느꼈다. ‘지영’은 이곳에서 ‘편안함’과 ‘평화’를 느끼고 ‘사랑’과 ‘복’을 찾게 될 것이라고.




한편, 세일링 보트에서 일하는 앤디는, 그녀의 보스가 아까 그 텔레비전에서 나오던 해양 보트 경기를 출전하는 까닭에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은 상태였다. 그녀는 나에게 나만 괜찮다면 본인과 함께 휴가를 함께 보내지 않겠느냐 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다음 행선지에 대한 일정도 숙박 예약도 없이 그곳을 찾은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반가운 제안이었다.


처음 만났지만 어딘가 모르게 편안함을 주고, 오래 알고 지내온 것 같은 익숙함을 주는 앤디의 성격과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그녀의 제안을 더욱 흔쾌히 받아들이게 하였다. 그렇게 처음 만난 우리는 예정된 휴가를 함께 보내기 위해 타국에서 도킹한 오래된 친구인양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섬의 해변에서 열린 연말연초 신년 카운트다운 파티를 함께 가고,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야밤에 열대 우림 동굴 속을 찾아들어가고, 김밥을 만든 후 그녀의 친구들을 초대하여 생일파티도 열고, 비 오는 날 텐트 치고 캠핑을 했다가 속성 이재민 경험을 하기도 하는 등. 입으로 설명하면 몇 시간은 쉬지 않고 떠들 수 있는 많은 경험들을 나누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나의 개떡 같은 영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는 그녀 덕분에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며 친구가 되었다. 첫 번째 행선지인 골드코스트 외에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던 나는 골드코스트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까 했던 생각을 바꾸어 3주간을 앤디의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3주간의 시간 속에서 나는 깃발 속에 씌인 한자의 마법처럼 그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낸 운명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꼈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으며, 공황 장애를 위한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어떤 불안감 없이 잠을 잘 수 있는 을 누렸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역시 큰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느끼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지내야만 한다고. 여행이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혼자 해변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체코 여행을 저질렀던 그때처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여기서 좀 살아볼까..?”


몸과 맘이 아파서 떠난 여행지에서 무턱대고 갑자기 여기서 좀 살아보겠다고 전화를 건 딸에게 엄마는 응원보단 걱정의 말을 전했다. 엄마는 내가 그곳에서 발작을 일으키진 않는지 늘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엄마의 걱정은 이해했지만, 나는 눈물이 났다. 진짜로 이곳에서 느낀 이 평온과 안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마음속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너’는 대답이나 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대답해줄 그분으로 나는 대학 시절 은사님이 떠올랐다. 내가 무얼 하든 늘 응원해주시는 분이다.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내 맘대로 하는 게 더 힘든 나이가 되기 전에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어요”


그리고 그에 대한 선생님의 대답.


“빙고, Just do it.”


어머니의 걱정과 반응은 부모로서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나 네 인생은 부모 형제 친구가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고. 나라면 한 시간도 고민 안 하고 바로 저지른 후 행복해질 거라고.


이사를 하루 앞두고 체코 여행을 간다며 통보를 들은 2 전의 그날처럼, 결국 불쌍한 우리 엄마는 나에게서 다시 한번 즉흥적인 1 호주 살이에 대한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통보를 전한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호주 은행에 가서 계좌를 만들고, 학생 비자를 위해 다녀야  어학원 수업을 세군 데나 청강하며 호주에 되돌아올 준비를 했다.  마침 앤디 역시 함께 살던 플랫 메이트가 나의 여행 기간 도중에 그녀의 나라로 돌아간 탓에 새로운 플랫 메이트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앤디, 아윌 비 백.”


나는 그녀에게   안에 돌아와 그녀의 플랫 메이트가 되어주겠다는 약속을 남긴 , 나의 여행 짐을 모조리 그녀의 집에 맡겨둔  1 중순   가방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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