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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탐험가 Jun 05. 2022

김밥 말러 호주로 간 여자



호주의 금빛 해안에서 펼쳐진 새로운 인생. 삼십몇 년을 엄마 품에 살면서 요리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고 공주처럼 살았으나, 이제부턴 본격 서바이벌이다! 여행으로 왔을 때야 주로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했지만, 골드코스트에 돌아온 이후부터는, 나는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서’ 요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요리 기행. 그 첫 번째 선택은 의외로 김밥이었다. 직접 김밥을 만들어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는데 김밥을 만든 이유는 다름 아닌 앤디 때문이었다. 내가 여행자로서 앤디의 집에 머무르던 어느 날, 앤디는 김과 참치 캔을 꺼내더니 김에 참치를 대충 싸 먹으며 한 끼를 해결하였다. 그 현장을 지켜본 한국인은 충격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데...


오 마이 갓... 앤디! 김과 참치를 그렇게 먹는 건 김에 대한 배신이라고!!

김밥 파라다이스의 나라에서 온 내가 밥 없는 김과 참치의 만남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지...!


그렇게 결국 나는 당근, 시금치, 계란, 참치, 그리고 한인마트에서 파는 단무지에 연근까지 구해서 앤디에게 내 생애 최초의 김밥을 만들어주었다. ‘코리안 스시’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 요리의 이름은 본래 ‘김밥’이라고 알려주면서. 이후 김밥은 앤디의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 랭킹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하며, 나의 호주 생활 600일 동안 수십 번도 넘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래의 사진에서 보다도 훨씬 더 많은 김밥을 자주 숱하게 만들었다는 후문...)


평생 만들 김밥 1년 만에 다 만들기 프로젝트 강제 체험 중  + 김밥 마스터 양성 클래스


여행자로서 처음 만들었던 김밥 이후엔 나는 비빔밥, 잡채, 불고기 등등을 만들며 한식의 달인이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요리하는 건 꽤나 즐겁고 흥미롭지만 한 가지는 문제는 내가 경험 부족으로 손이 워낙 느린 탓에 김밥이나 잡채 같은 요리를 할 때면 2-3시간도 훌쩍 넘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채를 썰어야 하는 요리가 그랬는데, 내가 1분을 천년처럼 칼질을 하고 나면 앤디가 나에게 묻고는 했다.


“지, 칼질 다 했니? 손은 괜찮지?”

“앤디, 손은 괜찮은데, 대신 나 다리가 너무 아파...”


칼질을 하는 천년의 시간을 내리 서있다 보니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할 때면 난 늘 손 대신 양다리가 아팠다. 그래도 이렇게 다리 아파가며 만든 요리를 앤디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볼 때면 그게 얼마나 뿌듯하고 좋던지. 한식을 만들어 앤디를 먹이는 것이 그 당시 나의 가장 큰 기쁨 중에 하나였다.


아직은 초보이지만 요리의 즐거움에 빠진 나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한식을 만들어 앤디와 그녀의 남자 친구 스캇에게 대접하곤 했다. 특히나 한식은 야채를 많이 활용하고 고기가 없더라도 다채롭게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 수 있기에 비건인 두 사람을 위한 메뉴를 선정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는 김치와 소면을 사 와서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헝가리에서도 매콤한 음식을 꽤나 즐긴다면서 한국 라면을 아주 좋아했던 앤디이기에 , 나는 비빔국수 역시도 앤디가 무척 좋아할 것이라 확신하였다.

소면을 삶고, 김치를 송송 썰어 간장과 설탕, 식초, 참기름에 버무리고 마지막에 깨까지 뿌리며 음식을 완성하였다. 역시나 앤디는 비빔국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는 외출 후 곧 집으로 돌아올 스캇의 음식까지 마련해 두었는데, 잠시 후 도착한 스캇은 비빔국수를 한 입 베어 물더니 갑자기 그릇을 들고 자리를 떴다.


‘앗, 무슨 일이지...? 음식이 입맛에 안 맞나...?’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간 스캇, 그의 손은 찬장 위에 놓인 전자레인지로 향하였다. 그러더니 그는 곧장 비빔국수가 든 그릇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우기 시작하였다.


.. .. ...? 스캇!! 데워먹으면  !  히트야!  히트!

그건 원래 차갑게 먹는 음식이라고!!”


차갑게 먹는 음식이 익숙하지 않은 스캇은 비빔국수가 죄다 식어버린 줄 알고 그것을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으려 했던 것이다. 결국 나의 만류에 ‘차갑게 식은 음식’을 마땅치 않아하며 식사를 마친 스캇. 손님들의 행복한 식사가 나의 큰 기쁨이었는데, 비빔국수 도전은 결국 나의 한식의 달인 여정에 작은 대미지가 되고 말았다. 그날 비빔국수 진짜 맛있었는데. 그래도 그날의 메뉴로 냉면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지...


훗날 다른 이로부터 중국인과 일본인은 안 그런데 한국인 룸메이트들은 요리를 하면 꼭 그렇게들 주변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 특유의 ‘정’ 문화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그들도 나처럼 요리 입문자로서 신나게 주변인들에게 밥을 해 먹이는 재미에 빠진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역시나 한식은 주변 사람들과 나눠먹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다. 요리를 하고 나면 양쪽 다리가 꽤나 아프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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