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골드코스트에는 캠핑 밴을 가진 사람이 많다. 특히나 직업도 없이 놀면서 캠핑 밴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그 수가 어느 정도냐면 내가 600일간 호주에서 만난 사람들이 50명 안팎이라고 가정할 때, 그중에서 캠핑 밴을 갖고 있는 사람의 수가 대여섯 명에 이른다. 물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내 친구 앤디의 주변에 캠핑 밴을 가진 사람들이 유독 많아서, 내가 평균 대비 더 많은 수의 캠핑 밴 소유주들을 만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걸 차치하더라도 골드코스트에서는 캠핑 밴에 사는 사람들을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그들이 캠핑 밴에 사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비싼 렌트비를 아끼기 위해서.
집이 없고 직업도 없는 국민들에게 호주 정부가 한 달 기준 약 200만 원 가까이를 지원해주니까.
365일 온화한 날씨로 인해 차에서 살아도 추위에 시달릴 일이 없다.
해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샤워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작은 캠핑 밴에 사는 것이 불편이야 하겠지만, 캠핑 밴에 사는 이들은 값비싼 렌트비를 내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유롭게 여러 지역을 다닐 수 있기에 이러한 생활을 즐긴다. 심지어 어느 지역에 가면 캠핑 밴 족(簇)들이 주차장에 모여서 부락을 이루고 있는 곳들도 있다. 내가 본 캠핑 밴 거주자들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약간 낡은 듯한 에스닉한 데코레이션 제품이 밴 안에 가득하다.
암모나이트, 코끼리 등이 그려진 알라딘 바지를 하나쯤 갖고 있다.
금붙이보다는 은과 나무로 된 액세서리를 선호한다.
차 안에선 인센스 향이 난다.
신기하게도 이런 히피 감성 물씬 나는 특징을 가진 사람들만이 캠핑 밴에서의 거주를 택한다. 캠핑 밴에 사는 사람 중에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좋아하고 핏이 쫙- 붙는 청바지를 좋아하는 이들은 도무지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다.
알라딘 바지 입은 히피 언니 오빠들의 캠핑 밴에서의 삶은 꽤나 멋있고 신념으로 가득 차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삶이 마냥 낭만으로 가득 차 있지만은 않다. 위에서 언급했듯 샤워시설이나 화장실 등은 공공시설을 이용해야 하고, 밴이라는 공간이 요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기에는 너무나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웬 종일 있다가는 경찰의 단속 대상이 되어 쫓겨나기도 일수라 1박을 할 수 있는 주차 자리를 찾는 것도 그야말로 ‘일’이다.
캠핑 밴을 주차시킬 수 있고 샤워, 요리, 충전 등등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캠핑장이 곳곳에 꽤나 많지만, 렌트비를 아끼기 위해 캠핑 밴에 사는 이들이 1박 이용 가격이 꽤나 비싼 캠핑장에 갈 리는 없는 법. 결국, 그들은 캠핑 밴에 몸을 싣고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단속을 피해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만 한다.
나와 같이 사는 앤디의 남자 친구이자, 사실상 나와도 반 동거 상태가 된 스캇은 늘 앤디에게 밴에서의 삶은 곧 자유라며 밴 생활에 대만족을 표했다. 그러나 사실 내 눈에는 스캇이 밴이 아닌 일반 가정집에서의 거주에 더욱 만족하는 것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거주지인 밴은 늘 주차장에 세워둔 채 매번 우리 집 거실에서 커다란 TV를 보고, 취침도 앤디의 커다란 침대에서 청하고, 부엌에서 이것저것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샤워도 매일같이 하면서 사실상 일반 가정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신나게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이 주는 안락함에 몹시 익숙해 보이는 스캇. 그는 어쩌면 ‘얽매이지 않는 자유’가 좋기도 하지만, 일을 하지 않아도 매달 받을 수 있는 200만 원이라는 돈의 달콤함에 빠져 이런 형태의 거주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만난 캠핑 밴 족들 중에는 스캇처럼 정부 지원금을 받으며 일하지 않고 사는 이가 대다수였으니까.
문득 요즘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이 하나 생각이 난다.
“평생 일 안 하고 200만 원씩 받으며 캠핑 밴에서 살기 vs 평생 일 하면서 평범한 집에서 살기”
누군가에겐 고민을 1초도 하지 않을 질문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꽤나 유혹적인 질문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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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날씨가 온화한 골드코스트에 살게 된 당신, 두 가지의 보기 중 과연 당신의 선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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