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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탐험가 Jun 09. 2022

영어와의 사투   "호주의 트램은 파티다!!”



아무런 계획도 대책도 없이 떠난 호주 생활에서 내가 맞닥뜨렸던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나름 영어 점수가 내신 평균 점수를 올리는 데에 효자노릇을 했을 정도로 영어를 곧잘 했었지만, 그거야 먼 옛날 일이고 현실은 영어로 소통할 때마다 수분 손실을 겪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 말인 즉, 늘 진땀만 뻘뻘 흘렸다는 뜻.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영어에 능통한 앤디와 그녀의 원어민 남자 친구 스캇과 지냈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부쩍 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두의 생각만큼 영어는 그렇게 손쉽게 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나의 영어가 느는 대신, 나의 거지 같은 영어를 알아듣는 그들의 진기명기만이 늘어갈 뿐이다. 그들이 약간의 한국어를 알아듣게 되는 것은 덤이고.


원어민과 살면 영어회화를 많이 시도해볼 법도 한데, 나의 호주 거주 이유는 영어실력 향상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난 그와 같은 목적으로 스캇과의 대화를 시도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는 말할 때 상당히 웅얼거리고 말하는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기에 실상은 그와 대화를 하는 것이 나에겐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예를 들면, 스캇은 아침에 일어나면 나에게 ‘하으-지’ 이런 식으로 말을 건다.

그렇다면 나는 거기서부터 추론을 시작한다.


지금은 아침 시간이다.

나는 그와 오늘 처음 마주쳤다.

그러므로 그는 나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 것이다.


즉, ‘하으-지’‘How are you, Ji’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파인 땡큐 앤유’고... 이렇듯 내가 스캇의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추측으로 대화를 하다 보니 앤디는 나와 스캇 사이에서 늘 통역관 역할을 해주곤 했다. 영어를 영어로 설명해주는 최초의 통역관. 스캇 역시 나의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서 스캇과 나는 우리만의 통역관이 없이는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스캇의 빠르고 웅얼거리는 영어가 나와 그의 대화를 막는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실 나에게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내가 듣기 영역에 몹시 취약하다는 것이다. 주로 한국인들은 잘 읽고 쓰고 듣는 대신 말은 잘 못 한다고 하는데, 나는 한국인이 아닌가 보다. 엉망진창이어도 뭐라도 내뱉을 순 있는데 정말이지 듣는 걸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중학생 때 영어 과목 선생님이 내 듣기 점수를 보고선 ‘답안지 밀려 썼니?’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을 정도로 나의 처참한 듣기 실력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답안지를 밀려 썼다고 오해받을 정도의 영어 듣기 실력이, 나이가 들고 나서 더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좋아질 리는 없는 법.


그래서인지 나는 호주에서 생활하면서 영어를 엉뚱하게 알아듣는 경우가 많았다. 한 예로, ‘Tram is a party’가 바로 그것이다. 다들 아실까나. 골드코스트의 트램은 파티라는 사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엔 트램역이 있어서 나는 종종 트램을 이용하곤 했었는데, 트램을 탈 때마다 나는 열차 내 방송으로 이런 영어 문장을 들었다.


“Tram is a party.”


‘트램은 파티다’라는 말을 도대체 왜 하는 걸까. 이게 무슨 상징적인 문장이란 말인가. 골드코스트는 관광지니까 트램이 파티를 벌이듯 관광객들을 신나게 실어 나른다는 뜻일까. 처음엔 그 의미가 굉장히 궁금했으나 거의 반년 이상 살 때쯤 되니 그것이 단순한 소음으로 여겨져 어느 순간부턴 ‘트램은 파티’라는 문장이 귀에 들리지 조차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친구와 같이 트램을 탈 일이 있었고, 문득 내 귀에 ‘Tram is a party.’라는 문장이 오랜만에 귓가에 딱 하고 꽂혔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니 이 참에 이게 무슨 뜻인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 친구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도대체 트램이 파티라는 건 무슨 뜻이니?”


나의 질문에 그 친구는 상당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야말로 무슨 말을 하고 있냐는 듯이.


“아니 방금 방송 못 들었어? 트램은 파티라고 하잖아. 이게 무슨 뜻이야?”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지, 이건 트램이 출발한다는 뜻이야.

Tram is departing이라고.”


아...... 드디어 반년이 넘게 닫혀있던, ‘나만 모르던’ 비밀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치명적인 듣기 실력으로 종종 의사소통에 혼란을 겪고는 했지만, 그럭저럭 길고 긴 호주 생활을 큰 문제없이 잘 버텨내었다. 그랬으니 지금 이렇게 한국에 잘 돌아오지 않았겠는가. 물론, 호주인이 나에게


“너 네 물건 다 챙겼어?"

(Do you have all your stuff?)


라고 물을 때 그것을 “Do you have oyster?”로 알아들은 후


“갑자기 굴은 왜?”


라고 동문서답을 하는 상황 따위를 제외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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