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 자주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새로운 자극과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을지 말이다. 술 없이도 즐겁게 놀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지금 뿐 아니라 대학생때도 고등학생때도 이런 생각을 종종 했던 것 같다. 학생 때는 친구들이랑 떡볶이 먹으면서 수다 떠는 게 전부였고, 대학생때는 술마시는게 전부였으니까.
어릴 때 우리는 시덥지 않은 걸로도 충분히 하루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동네의 새로운 곳 가보기, 티비에 나오는 음식 따라서 요리 해보기, 친구들과 노트를 꾸며 끝도없이 비밀노트 주고받기, 놀이터에서 얼음땡같은 놀이 하기, 심지어는 친구집에 가서 서로 아무말도 없이 각자 좋아하는 책을 읽고는 했다. 대학생때는 자취하는 친구가 그날의 테마를 정해 작게 홈파티를 하기도 했다. (인도문화의 밤 같은것이 기억난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걸 더 이상 안 하게 됐다. 마치 어른이 되면 당연히 그만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요즘 깨달은 게 있다. 돈이 없으면 오히려 더 창의적으로 놀 수 있다는 것. 헌책방에서 맘에드는 요리책을 골라 즉흥적으로 저녁식사 만들기,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보드게임의 밤. 달밤에 친구들과 놀이터 뺑뺑이를 타면서 각자 가고 싶은 시간을 얘기하며 낄낄거리거나, 베토벤의 7번 교향곡을 틀어놓고 일부러 진지하게 체스를 둔다거나. 이런 것들을 하면서 우리는 다시 어린애처럼 신나하고 웃고 떠든다.
그러다 얼마 전, 베를린의 템펠호퍼 공원에서 연날리기 축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어릴 때 추석에 한강에서 연날리기 했던 기억, 학교에서 연 만들기 수업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축제가 연간 있다는건 알았지만 매번 놓쳤기 때문에 이번에는 달력에 표시해놓고 축제날이 오길 기다렸다. 연날리기를 이 시즌에 하는건 독일도 비슷하구나 싶었다. 이런 전통놀이축제는 애들한테도 재밌겠지만 어른한테는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넷플릭스 쇼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모든 놀이들이 다 어릴적에 재밌게 즐겼던 놀이아니었던가.
축제 당일, 사실 그렇게까지 엄청난걸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냥 사람들이 각자 연을 가져와서 각자 연날리기를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는 지하철에서부터 몰려오는 엄청난 인파에 조금 주춤했다. 마치 여의도 불꽃축제에에 사람들이 몰린 풍경 같았다. 공원에 도착하니 푸드트럭에 콘서트까지,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그리고 템펠호퍼펠트 공원의 하늘에서는 평범한 연부터 우주비행사 모양, 곰돌이 모양의 연들이 우주를 비행하듯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드론 연도 있었다. 그 속에 누워서 올려다보는 하늘이 장관이다.
문득 어릴 때 책에서 봤던 연싸움이 생각났다. 상대 연과 겨루기를 하는건데 실에 유리가루를 발라 상대 연줄을 끊기도 한다고 한다. 말로만 들었지 한번도 본적은 없다. 드론 연으로 상대 연꼬리를 공격한다던가, 그런 대회가 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밤이 되자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독일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탁 트인 하늘에 불꽃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 (순간 패닉이 올것같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가 즐질 수 있는 축제가 있다는게 좋았다. 여름이 지나가면서 더이상 늦은 시간까지 떠있는 햇살을 즐길수는 없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음악, 영화,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는 시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