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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 Oct 22. 2024

구석자리의 손님




그날도 평범한 저녁이었다. 

바깥은 이미 어둑해졌고, 식당 안은 따뜻한 불빛과 고기냄새로 가득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중년의 남자는 조용히 구석자리에 앉았다. 혼자였다. 2인분 불고기 그릴과 김치찌개, 거기에 맥주와 소주를 주문했다. 한 사람이 먹기에는 제법 많은 양이었지만, 그는 마치 마지막 식사를 하는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몇시간에 걸쳐 음식을 즐기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한식을 좋아하는 평범한 독일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작은 주머니를 꺼내 담배를 마는 순간,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독일에서는 담배를 말아 피우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담배팩에서 풍기는 지독한 담뱃재 냄새와 약간 눅눅해보이는 다 피고남은 담배모음을 보고 나서는 그가 노숙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농담처럼 하던 말이 있다. 

베를린에서는 누가 힙스터고 누가 홈리스인지 알 수 없다고. 이에 관한 여러가지 밈이 있는데 이건 단순한 밈이 아니다. 어느날은 친구와 길을 걷다가 아주 젊고 반항적인 옷을 입고 있는 중년의 남자를 보았는데, 그가 갑자기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둘다 충격을 받기도 했다. 


아무튼간에 구석에 앉은 그 남자는 정말 평범한 독일인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술에 취해있지도 않았다. 한참이 지나고 계산할 때가 되어서 그는 백팩을 뒤적거리더니, 예상과 달리 아주 멀쩡한 가죽 지갑을 꺼내 카드를 내밀고 계산을 마친 뒤 떠났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나는 그를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저녁 늦게 집에 갈때나, 낮에 그 거리를 지나갈때 그를 종종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비슷한 골목 근처에서 혼자 맥주를 들고 앉아있다. 그리고 볼때마다 그는 혼자였고, 우두커니 앉아있었고 항상 어딘가 우울해보였다. 


가끔씩은 노숙자와 길거리의 중독자에 대해서 생각한다. 

외국인으로써, 멀쩡한 삶에서 미끄러져 노숙자가 되는 과정을 생각하면 어쩐지 남의 일만이 아닌것 같아 아찔하다. 독일의 노숙자들이 노숙자가 되는 과정은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문제나 약물문제가 크다고 들었다. 정신적인 문제나 약물문제로 살던 집에서 쫒겨나거나 이혼, 별거 등으로 집을 잃거나. 그런식으로 직장을 잃고 집을 잃으면 노숙자가 되고, 괴로움을 이기기 위해 술이나 약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들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고, 처음부터 노숙자가 아니었다는것을 생각해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살면서 마주치는 어떤 사람들은 어쩐지 기억속에,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는다. 

집이 없는 이들에 대한 다른 기억이 있다. 어릴때부터 엄마가 종종 이야기를 했던, 마을을 떠돌던 고아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엄마가 살던 동네에 떠돌이 고아 무리가 있었는데, 종종 외할머니에게 밥동냥을 하러 왔다고 한다. 그 여자애는 당시 엄마와 비슷한 나이 또래였고, 어렸던 엄마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외할머니에게 그냥 같이 살게 해주면 안되냐고 졸랐다. 하지만 그 세대가 그렇듯, 엄마는 형제들이 많았고 외할머니 또한 식구를 더 늘리기도 힘들었다. 아주 이따금씩 엄마는 그 고아소녀를 떠올리면서, 그애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살아있을까?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 여자아이는 몇 십년이 지나도록 잊히지 않고, 엄마의 어린시절 어떤 순간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름도 나이도 잘 모르고 그냥 또래 여자아이였다는 것만 기억에 남은채로 말이다.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식당에서 본 그 남자를 생각한다. 그는 지금도 그 거리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여전히 혼자 맥주를 마시며 앉아있을지도 모른다. 가끔 그 거리를 지날 때면, 조용히 식사를 즐기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가 어떤 사연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게 되었는지, 나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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