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가 원하던 목장 생활이 이런 거였나?
*주의사항 : 목장의 모든 시설 이름과 시간, 정보는 임의로 변경합니다. 사람 이름은 알파벳 초성으로만 표기.
그리고 밥 먹을 때 읽는 것을 강력히 금지합니다(더러움 주의)
이 목장에 오기 전에 정해진 것이었지만, 나는 밀커가 되었다. 그리고 1주일 간은 적응 차원에서 9시간만 일한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1일 12시간 근무. 사실 9시간 근무가 정상인데, 코로나 때문에 그만 두는 사람은 있는데 새로 입사하는 사람이 없어서 있는 사람들로 돌려 쓰는 거 같았다. 한창 심각할 때는 꽤 높은 목장 관리인이 와서 착유를 했어야만 했다고.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 수준이었다니 인사 담당자가 어쩐지 날 잡으려 하는 이유를 알 거 같았다. 기왕 온 거 잘 해 보자 다짐하며 9시에 첫 출근을 했다.
현장에 들어가자 건초 냄새, 퀴퀴한 소 배설물 냄새, 우유 냄새 등이 확 풍겨왔다. 그리고 소를 불러오는 소리, 밀킹을 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 이제부터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구나. 내가 일하게 될 곳은 Milking 1 section이라는 곳이었다. 구조를 말하자면 정 중앙에 통로가 있고 양 옆으로 착유하는 기계가 길게 이어져 있는, 말하자면 Herringbone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곳이었다. 나에게 업무 전반을 알려준 사람은 같은 집에 사는 G였는데, 아이리쉬 친구였다. 그 내용은 소가 기계 뒷 편 통로로 줄지어 들어와서 서면, 각 섹션에 서 있는 밀커들이 소 젖꼭지에 소독약을 뿌리고 가지고 있는 헝겊으로 닦은 다음에 밀킹 컵을 붙인다. 다른 작은 목장들에는 컵 붙이는 사람, 떼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하지만 여기는 다 자동화가 되어 있어서 일정 시간이 지나거나, 정해진 양을 착유하면 자동으로 컵이 떼어지는 시스템이다. 방금 양 옆에 착유 기계가 있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각각 50마리의 소가 들어가게 된다. 이 한 무리의 소들의 착유가 끝나면 맨 첫 번째 구역에 서 있던 사람이 아이오딘(속칭 빨간약) 통을 들고 뛰어다니며 소들의 젖꼭지를 다시 소독해준다. 혹시 착유할 때 유두에 났을지도 모르는 상처 때문에 한 번 더 소독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소들을 집에 가라고 풀어준다. 사람들이 다시 통로를 왔다갔다 하며 다음 타자들을 불러온다.
이 팀은 순수히 밀킹만 하는 팀이어서 내가 궁금해 했던 송아지 돌보기나, 트랙터 몰기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나 구인 공고에도 나와 있었던 항목이 ‘목장 경험이 없는 사람은 밀킹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라는 것이었고, 나도 거기에 동의했기 때문에 지금은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할 때라고 생각했다. 아직 나는 이 회사와 신뢰를 쌓지 않았다. 여기서 계속 일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업무도 하고 싶다고 요청할 수 있겠지.
소들도 낯가림이 심한지 처음 보는 내가 젖을 짜겠다고 오니까 똥오줌을 엄청나게 지려댄다. 그나마 소 엉덩이와 맞닿아 있는 부분에 배설물 받이가 있어서 어느 정도는 막아주는데 그게 다 차면 어쩔 수 없이 넘치게 된다. 지금 생각해도 엄청나지만 밀킹하느라 걸어다닐 뿐이었는데 촤촤촥 소리가 나더니 쏟아지는 배설물 폭탄이란 정말 와일드하다. 그렇다, 이것이 목장에서는 비위 센 사람만 살아남는 이유인 것이다. 가끔 소들의 기분이 안 좋아질 때는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뒷발질을 엄청나게 해 대기 때문이다. 나도 가끔 손가락을 밟히거나 팔목을 차이거나 했다. 다행히 어디 부러지진 않았지만 멍이나 긁힌 상처가 많았다.
그리고 소들은 각자 고유 번호가 있는데 귀에 달린 태그에 적혀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목장은 거의 다 자동화 방식이라서 기계가 태그를 판독한다. 그러나 그런 기계에도 문제는 있는 법이라 고유 번호가 스크린에 안 뜰 때도 많았다. 그 때는 몸을 숙여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입력한다. 소의 뒷다리를 툭툭 치거나 하면 소들이 싫은지 고개를 돌린다. 그 때를 노려서 귀를 확인하는 것이다. 가끔 운이 좋으면 기계가 바로 번호를 읽어서 굳이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서 좋다. 낮 시간 때면 그나마 보이기라도 하지 밤이 되면 아무리 전등이 켜져 있어도 잘 안 보인다(나중에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그럼 울며 겨자먹기로 밀킹 기계 뒤로 올라가서 확인하는 거다. 이게 정말 번거롭고 귀찮았다. 그래서 경험이 많은 근무자들은 아예 작은 손전등을 들고 다니면서 빛을 비춰 확인했다.
휴식 시간은 30분씩 두 번. 순식간에 30분 따위는 후루룩 지나가 버린다. 브레이크 타임이 12시간 일하는 것 치고는 짧다. 확실히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면 긴장을 하게 되어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게 된다. 그러나 먹지 않으면 남은 시간 일 할 때 힘들어지니까 다 먹지 않으면 안된다. 언제나 일 할 때는 쉬는 시간이 길어지길 바라지만 그럴수록 내가 받는 돈은 적어질 뿐이니 짧은 게 좋다고 생각한다.
많은 소들을 착유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착유장이 더러워지는데, 일정 시간이 되거나 착유 할당량이 다 채워지면 청소를 한다. lead milker(경험 많은 밀커, 말 그대로 다른 밀커들을 감독한다.)가 우유 탱크에 연결 된 필터랑 호스를 해제하고, 다음 작업을 위해 새로운 필터로 갈아끼운다. 가득 찬 탱크는 목장 소속 트럭 드라이버가 와서 우유를 트럭에 옮겨담아 비워주고, 트럭은 우유 공장이 있는 시드니로 떠난다. 업무 시간 동안 더러워진 컵들은 일일히 분리해서 기계 아래쪽에 있는 컵 세정용 장소에 잘 꽂아준다. 컵 내부는 따뜻한 물로 저절로 살균되기 때문에 그 동안 분리되지만 않게 잘 확인해주면 된다. 나머지 밀커들은 각자 역할을 분담해서 청소를 한다. 어떤 사람은 착유 기계 뒤로 돌아가서 물을 뿌리며 소들의 배설물을 씻어내고, 다른 워커 두 명은 청소용 호스를 세정용 거품이 나오는 수도꼭지에 연결해서 기계와 통로에 골고루 뿌려준다. 그리고 난 뒤에 고압 호스로 물을 쫙쫙 뿌려가며 오물과 거품을 깨끗이 씻어낸다. 사실 나머지 한 사람은 화장실과 런치룸의 쓰레기를 비우고 비품을 채워넣는다. 그리고 화장실도 물 청소 한다. 소독용 아이오딘을 담는 통도 잘 씻어서 새로운 용액을 담는다. 대략 이게 청소의 루틴이다.
소들의 젖꼭지를 닦는 천은 큰 자루에 넣어서 따로 세탁한다. 작업장 뒤에 세탁기가 두 대 있는데, 리드 밀커가 시시 때때로 다 찬 자루를 끌고 가서 더러워진 천들을 세탁한다. 밀커들은 허리에 천을 넣는 가방을 따로 매고 다니는데 이게 천이 차면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에 허리가 좀 아팠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급하게 움직여야 할 때는 크로스백처럼 한 쪽 어깨에만 매고 다니게 되었다.
청소가 끝나면 다시 착유 시작이다. 이제 하루의 반절이 지나갔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단지 지루함, 졸림과 싸워야 한다는 점이 좀 힘들었다. 어디서 일하나 다 그렇겠지만 나의 ‘집에 가고 싶다’ 병이 다시 도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즐기지 못한 에어리 비치가 생각 나면서 공상의 나래에 빠져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하필 이 날 이어폰이 망가지는 바람에 나는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 음악 없이 9시간을 쌩으로 버텨야만 했다.
그렇게 짧은 듯 긴 9시간을 보내고 집에 갔는데 하우스 메이트들이 득달같이 달려나와서 오늘 일 어땠냐고 괜찮았냐고 물어본다. 첫 날이니 아마 실수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G가 나에게 너 이 일 처음 하는 거 맞냐고 물어볼 정도였고 너 일 잘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난 다른 칭찬보다 내 능력에 대한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그래서인지 괜히 기분이 들떴다.
오늘 처음이니 말해주는 거지만 너 밀커 하면 어깨랑 팔에 근육통 생긴다고 밀킹 유경험자들이 따뜻한 조언을 해 주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씻고 나서 바로 바르는 파스를 발랐다. 일단 아무 문제는 없었다. 제발 나는 근육통에서 강한 예외 체질이기를 빌었다.
같은 집에 사는 커플은 송아지를 돌보는 팀에서 일하는데, 원래 둘 다 밀커였다고 했다. 그런데 일이 자기들과는 안 맞는 거 같아서(밀커라는 게 송아지들에게 밥 주는 일인 줄 알았다나.) 팀을 옮겼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쩐지 나에게 밀킹하는 거 괜찮냐고, 사람들은 친절하냐고 조금 귀찮을 정도로 물어봤다. 그 이유는 내가 야간 조로 옮겨가게 되었을 때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