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괴롭힘과 새로운 착유장
고된 첫 근무가 끝나고 나는 저녁도 안 먹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일이 나랑 맞지 않는다느니 그런 생각은 사치에 불과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했는가.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근무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다행히 근육통이 없었다. 역시 나는 행운아다. 날 걱정했던 하우스 메이트들에게 말하니 매우 놀라면서 호주 애들도 처음 근무하는 애들은 몇 주간 근육통 오고 몸살 걸리고 난리라는데 넌 뭐냐는 반응이었다. 나도 이럴 줄은 몰랐지. 이럴 때 보면 육공장에서 일한 것도 나름 도움이 되는 듯 하다. 아무리 더러운 꼴을 봐도 웃어 넘기고 체력도 많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채 안되어서, 나는 기존에 있던 워커들과 같은 시간에 출근하게 되었다. 아무리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도 그렇지 초보자에게 12시간 쌩으로 버티라니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배가 아파지는 나로서는 너무 가혹한 시련이었다. 주에 5일은 기본이고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6일까지도 일했다. 정말 쉴 틈이 없었다. 휴일이라고는 고작 하루였는데 그 휴일마저도 장 보러 근처 시내로 나갔다 오면 끝났다. 그 와중에도 일요일은 더블페이니까 어떻게든 일요일은 꿋꿋이 일한 나도 참 근성있는 사람이라 볼 수 있겠다.
대략 2주일 정도 일하고 바로 인사팀에게 그냥 야간조로 보내달라고 했다. 어차피 야간에 일해도 추가 수당 더 안 붙는다. 호주 3대 목장인데 이런 게 불법이 아니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일요일 추가 수당은 잘 나왔다. 생각해보면 한 달 정도 일했던 퀸즐랜드에 있는 아보카도 팩킹 쉐드도 참 웃긴 곳이었다. 일요일에도 근무하는데 추가 수당이 전혀 붙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게 사업장의 종류에 따라(특히 농업) 다른 임금 지급 기준이 정해지는 모양이었다. 나야 다른 작물 시즌을 기다리며 짧게 근무했으니 별 불만은 없었지만 내 친구 중 한 명은 거기서 거진 6개월 넘게 일했다고 한다(망고 시즌 12월~아보카도 시즌 7월). 그 친구도 이상함을 느끼고 관련 법률을 찾아봤는데 돌아오는 건 합법이라는 냉정한 현실이었다.
회사 측에서도 어떻게 얻은 워커인데 놔 줄 수는 없었는지 바로 그 다음주부터 야간 조로 들어가게 되었다. 오히려 나의 제안에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하는 시간대만 바뀌었지, 다른 건 거진 그대로였다. 낮에 일하는 것 보다 조용하고 보스들이 적어서 좋았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터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육체적 혹은 정신적 둘 중에 하나만 힘들면 조용히 넘어갔을 텐데 둘 다 힘들면 난 정말 못 참는다.
그 문제라는 건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세 명의 오지 워커들이 내 행동 하나하나를 걸고 넘어지는 게 아닌가. 영어 원어민이 아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태도가 맘에 안 들었는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점점 갈수록 도가 지나치게 괴롭혀 댔다. 이래서 하우스 메이트 애들이 거기 워커들 어떻냐고 그렇게 물어봤던 거구나. 싶었다.
나름대로 거기서 만난 S는 정말 친절해서, 쉬는 시간에 틈 내서 말을 걸어줬다. 일 할 때도 내가 겉도는 거 같으면 괜히 다가와서 이것저것 말 하는데 그 마음씨가 착해서 어느 정도 위안을 받았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걔들 정말 왜 그러냐며 내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바빠서 걔들이 뭐라고 했는지도 몰랐는데 일에 익숙해질 수록 뭐라고 하는지 아주 잘 들리더라. 원래 어떤 언어건 욕은 서로 잘 알아듣는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행동하는 것도 자기들 웃음거리로 삼기 바빴다. 다른 워커들이야 평범하게 인사 하면 받아주고 스몰 토크도 그럭저럭 나눴는데 유독 저 세 명만 난리였다. 성질 같아서는 말 안 듣는 소 끌어올 때 사용하는 지팡이 가지고 그 인간들을 흠씬 두들기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그들은 호주 시민권자였고 나는 일개 워홀러였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내쳐지는 걸로 끝날 게 뻔했다. 나의 미래를 위해서 분하긴 하지만 내가 참는 수 밖에 뚜렷한 방법이 없었다. 나도 나름 노력했다. 내가 말을 먼저 안 걸어서 그런 거라면 세 명 중 괴롭힘 주도자인 애한테 가서 전혀 쓸데 없는 이야기라도 즐거운 척 말을 걸어봤다. 그것도 처음에만 반짝 괜찮고 갈수록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다. 그 와중에 야간 조 리드 밀커는 눈치도 없는지 자꾸 나랑 날 괴롭히는 주동자를 같은 시간에 휴식시켰다.
그렇게 쌓여가는 스트레스는 절대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두운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게 보였는지 하우스 메이트인 Y와 G가 진지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알고 보니 지금은 송아지 돌보는 파트에서 일하는 Y는 남자친구와 함께 밀커로 입사했으나, 똑같은 사람들이 괴롭혀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친절한 친구, 그리고 리드 밀커인 G가 따뜻하게 말해주는 바람에 나는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다.
마치 태양과 바람처럼, 외부에서 불어오는 고통에는 최대한 버티다가 한 순간 비치는 따스한 태양빛에는 방어가 해제되어 그만 울컥해버리는 것이다. 그냥 안부 인사만 했을 뿐인데 상대방이 울어버리니 G도 많이 놀랐으리라 생각한다. 한 번 터진 감정의 둑은 세차게 속에 있는 응어리를 쏟아냈다. 일 자체는 전혀 힘들지 않은데 사람이 문제다. 내가 먼저 그 사람들을 괴롭힌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참아야 하느냐… 이럴 거면 난 그만 두겠다. 이런 내용이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 때 더 들은 이야기인데 G도 자기 처음 입사했을 때 그 패거리들이 이상하게 굴길래 하지 말라고 했단다. 그들은 바로 괴롭힘을 멈췄다고 했는데 이 때 언어의 중요성을 또 다시 실감했다. 물론 G가 아일랜드 출신이라 영어 원어민이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누가 내게 불이익을 입혔을 때 그 놈에게 반격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하루하루가 더디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확히 한달 정도 일하고 슈퍼바이저에게 진지하게 뭐같아서 못해먹겠으니 포지션은 그대로여도 좋으니 일하는 장소만 바꿔달라고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지금은 착유 하는 사람이 너무 부족해서 안된다고 하더라. 그래놓고는 어떤 워커 한 명도 좀 안 좋은 일(따돌림)을 당하고 있으니 이번 목요일 조회 때 전체 공지할 거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그건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한 번 불편함을 느끼니 마음이 더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를 테면 자르라지, 어차피 난 캐주얼 워커라서 내가 내일 당장 그만 두던, 고용주가 나를 즉시 잘라버리던 언제든 끝장을 봐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만 두고 빅토리아 북부나 남호주로 가서 다른 목장 일이나 알아볼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다른 목장들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목장주들이 원하는 것은 짧게라도 좋으니 이 업계에서 일한 경력이다. 그래서 난 구직할 때 솔직하게 다 털어놨다. 그 목장 분위기 좋냐, 내가 겪은 일들이 힘들어서 적어도 날 괴롭히지 않는 워커들이 있었으면 한다. 이게 꽤 효과가 좋아서, 세 곳의 목장에서 나에게 답장을 줬다. 그러나 나는 하나에 집중하는 유형이라서 셋 중에 제일 괜찮은 조건의 목장과 연락을 이어가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목장의 분위기는 좋고 숙소 제공 되며, 지금 일하는 곳 보다는 근무 시간이 짧아서 워라벨 맞추기도 좋았다. 캐주얼 근무긴 했지만 시급도 1 달러 더 높았다.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내가 이 목장에서 일한다고 하니 듣자마자 아 그 커다란 팜? 자기 딸도 내년에 거기로 일하러 간다고 해서 이 목장이 정말 크다는 걸 실감했다. 여하튼 일단 가겠다고 하고 인사 담당자에게는 사직 메일을 보냈다.
나 그만 둘 거다. 계약서에는 그만 두기 2주 전 노티스 내 달라고 해서 이렇게 연락 준다. 그 동안 고마웠고 솔직하게 말해달라, 내 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나? 대략 이런 식의 내용이었는데 답장은 언제나 그렇듯 빨리 왔다. 다른 워커들이 말하길, 네 일하는 방식은 완벽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어서 유감이다.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들어줄테니 더 있어주면 안되겠나? 라고 하길래 날 괴롭혀댔던 그 세명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난 얘들이랑 일하느니 다른 팜 가겠다고 했다.
그때는 지쳐있었고 실제로 짐까지 다 싸 둔 상태로 목장의 대답에 따라 그만 둘지 아니면 계속 다닐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내심 여기서 얻어 낼 게 많아서 얘들이 나를 잡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도 그럴게, 오며 가며 봐 둔 트랙터나 큰 중장비들을 나도 운전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은 목장으로 가면 뭐를 시켜달라고 하기에도 좀 눈치 보이기도 하고. 이것 저것 재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나였는데, 유독 이번 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슈퍼바이저도 G에게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연락을 다 하더라. 네가 원하는 대로 가장 최근에 생긴 로터리 방식의 착유장으로 보낼건데 괜찮은지도 물어봐 줬다. 처음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대응이었다. 사실 나도 원인이 눈 앞에서 사라지면 그 뒤로는 일절 신경 안 쓰는 사람이라서 못 이기는 척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착유팀 슈퍼바이저에게 고마움을 느끼진 않았다. 진작에 처리를 잘 했으면 내가 더 마음 고생할 일도, 사직 메일까지 보낼 일도 없었지 않는가.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렇게 좋은 감정은 없다.
그렇게 괴롭힘 소동은 끝이 났고 나는 다른 착유장으로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