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를 읽고
삶이라는 도서관
다소곳한 문장 하나 되어
천천히 걸어나오는 저물녘 도서관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말하는 거구나
서가에 꽂힌 책들처럼 얌전히 닫힌 입
애써 밑줄도 쳐보지만
대출 받은 책처럼 정해진 기한까지
성실히 읽고 깨끗이 반납한 뒤
조용히 돌아서는 일이 삶과 다름없음을
나만 외로웠던 건 아니었다는 위안
혼자 걸어 들어갔었는데
나올 땐 왠지 혼자인 것 같지 않은
도서관
송경동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창작과 비평사
시의 2연에 자꾸 눈길이 머문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말하는 거구나/ 서가에 꽂힌 책들처럼 얌전히 닫힌 입
언젠가부터 학교 교육현장에서 ‘말하기’보다 ‘듣기’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일리 있는 말이라 나도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친구들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에게 ‘경청! 경청!’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 자신도 경청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알프레트 브렌델은 ‘경청(listen)이라는 단어가 침묵(silent)이라는 단어와 똑같은 알파벳으로 쓰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다른 이의 말을 온전히 듣기 위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내가 말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친구들과 모여 대화할 때면 다른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중에 내게 그와 관련된 일이 떠오르면 나는 그때부터 그 생각 속에 빠져 다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집중을 못한다. 얼른 내게 떠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진다. 그러고 보니 어느 모임에서도 나의 말하기 분량은 적지 않다. 침묵을 못 하니 경청을 못 하고 그 여백을 내 말로 다 채우려 한다.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니 그를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기회를 자주 놓치고 만다. 말을 못 해서 후회하기보다 말을 해서 후회하는 일도 늘어만 간다. 이런 알아차림이 잦아지면 나도 침묵의 여백을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할까? 나의 알아차림은 자주 후회와 한 묶음으로 놓여있곤 한다.
시의 3연 대출받은 책처럼 삶을 정해진 기한까지 성실히 쓴 뒤 깨끗하게 반납하려면 우리 삶을 어떤 덕목으로 채워야 할까? 당신은 자신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침묵과 경청을 떠올려 보았다. 저분은 남의 이야기를 참 잘 들어줘. 저분은 평소 말수가 적어서 저분의 말에는 권위가 있지. 삶의 저물녘에 이런 얘기 좀 들어보는 사람으로 여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