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다시 태어나서 사는 나의 세상

나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by 전병근

다시 태어나서 사는 나의 세상


오늘, 나는 맨발로 바닷가를 걸었다.

차가운 모래가 발바닥을 간질이고, 파도는 쉼 없이 밀려오며 내 마음을 조용히 두드렸다.

삶이 고단하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바다는 아득한 침묵으로 대답했다. 다만 더 큰 울림으로, 더 큰 숨결로, 내 안의 무언가를 흔들어 놓았다.

물결에 몸을 맡긴 해초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나의 미련과 욕심 또한 저 조류를 따라 멀어지는 듯 보였다.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이나 한적한 바닷가를 홀로 걸어갔다.

밀물은 어느 순간 나에게 속삭였다.

“아직 감당하지 못한 열정을 품어 보라.”

그리고 썰물은 물러가며 조용히 일렀다.

“이제 욕심을 놓아라.”

그 말들이 가슴속 깊은 곳에 파도처럼 번져왔다.

이상하게도 오늘, 나는 이 작은 가슴으로 저 드넓은 바다를 다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힘이 느껴졌다.

슬픔도, 고뇌도 잠시 멈춘듯한 이 바닷가 위에서는 오직 푸른 그리움을 수놓으며 날아오르는 갈매기들만이 하늘 위에 선물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나는 울릉도의 초등학생이었다.

매일 새벽마다 들리던 제일교회의 종소리가 나의 아침을 깨웠다.

어른들은 시끄럽다며 투덜댔지만, 어린 나에게 그 소리는 마치 희망의 노래처럼 들렸다.

언젠가 나를 이 섬에서 데리고 나갈 구원의 울림처럼 느껴졌다.

새벽마다 낚싯줄을 들고 축항으로 향하면, 나는 늘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예수가 바닷가 어부들을 위로하던 장면을 어렴풋이 떠올렸던 것인지 모르겠다.

울릉도는 세상과 멀찍이 떨어진 고립된 섬이었다.

눈을 뜨면 언제나 끝없이 퍼지는 바다가 나를 맞았고, 바위 하나는 어머니가 벗어놓은 버선처럼 조용히 섬 한쪽에 놓여 있었다.

지독히 고요한 여름밤이면 개구리 소리만 가득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고요 속에서 내 마음은 늘 육지를 그리워했다.

어딘가로 훨훨 날아가고 싶은 마음은 그때 이미 시작되었다.


울릉도에서 다섯 해, 울진 죽변에서 두 해를 더 살았다.

그곳에서도 바다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언덕 위 하얀 등대는 날마다 태평양을 향해 빛을 던졌고, 등대를 감싸던 대나무 숲은 내 외로움을 더 깊게 깔아앉혔다.

바다는 내 어린 마음을 빼앗았고, 나는 어느새 바다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운명은 나를 또다시 섬으로 이끌었다.

부산 태종대 옆의 작은 섬, 조도.

섬이 싫어 도망쳤건만, 다시 네 해를 섬에서 보내야 했다.

졸업 후, 나는 오래도록 가슴에 품어온 꿈 ―

“언젠가 태평양의 끝을 보리라”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일곱 번이나 태평양을 건넜다.

하지만 그 끝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립된 선박 위의 시간은 길고도 답답했다.

나는 자유를 꿈꾸었지만, 세상은 나를 또다시 가두었다.


필리핀에서도, 오사카에서도 그 끝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끝내 나는 ‘태평양의 끝’을 찾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끝이라는 것은, 찾는 것이 아니라

날개를 펴는 순간 스스로 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제 갈매기로 환생했다.

바닷가가 아닌 호수 위를 떠도는 이유는, 어쩌면 아직도 미련이 남아서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곳이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분하지 못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바다의 짠내가 느껴진다.

그 소금기야말로 내 삶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이 호숫가에서 멀리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도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편다.

고립되지 않은 진짜 자유를 향해,

끝없이 날아오르기 위해.

태평양의 끝은 결국 찾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끝을 향해 날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 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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