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태평양을 일곱 번 건넌 사람

나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by 전병근

태평양을 일곱 번 건넌 사람


아주 오래전, 졸업을 마치고 처음 세상으로 발을 내딛던 해였다.

그때 나는 일본과 미국 서부를 오가며 태평양을 일곱 번이나 건넜다.

가는데만 열세 날, 돌아오는 길도 열세 날.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위에서 나는 외롭고도 치열한 젊음을 온전히 바다에 내맡겼다.

그 시절의 항해는 꿈이 아니라 운명이었고, 선택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삶이었다.


세월이 흘러, 다시 태평양을 건너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스스로 원해서, 그리고 큰아들과 함께였다.

미국 동부로 향한 열네 시간의 비행.

창밖 아래 펼쳐진 태평양은 여전히 거대한 숨결로 넘실거렸지만, 이제 그 바다는 두려움의 바다가 아니라 회상의 바다가 되어 있었다.


여행객들 중 부산에서 온 이들이 많았다.

담소를 나누던 중, 한 분은 매형 두 분이 해양대학 기관학과 30기 동문이라 했다.

또 다른 분은 필리핀 수빅에서 나와 함께 근무했던 이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송도에서 미국으로 떠난 여행길에서, 부산의 바다와 옛 인연이 이렇게 다시 이어졌다.

세상은 넓어 보이지만, 사람의 인연은 언제나 좁고도 깊은 실타래처럼 얽혀 흐른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인천 송도에 살고 있지만, 그 순간 마음은 오래전의 부산 바닷가로 조용히 돌아가 있었다.


사람의 삶은 그렇게 서로의 길 위에 가녀린 실을 하나씩 걸어두며 이어져 간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더 고요해지는 것도, 어쩌면 익어간다는 또 다른 이름인지 모른다.


문득 1985년, 대학 3학년 시절 실습선에 올랐던 해가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젊음 하나로 세상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갔다.

미국과 캐나다를 처음 마주했던 그 설렘은 아직도 눈앞처럼 선명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나이가 되어, 열정보다는 담담한 평온이 마음을 채우고 있다.


미국 땅을 여러 번 밟은 이후로, 그곳은 더 이상 낯설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그저 또 하나의 풍경, 또 하나의 계절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새로운 곳을 향해 날고자 한다.

그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자, 내 안의 바다가 끝나지 않는 이유다.


많이 안다는 것이 반드시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지식은 삶을 비추는 등불이지만, 때로는 마음의 평화를 어둡게 가리는 그림자이기도 하다.

부처의 깨달음 또한 그러한 역설 속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의 여행을 마치며 나는 생각한다.

모든 여행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날개를 접지 않은 한 마리 갈매기다.

바람이 허락하는 한, 계속 날아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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