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바람직한 학교생활

나는 어떻게 살아가기 시작했나

by 전병근

바람직한 학교생활


한국해양대학 — 이름조차 생소했던 그 학교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입학식과 동시에 신입생 400명 전원이 내무 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던 대학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처음에는 “ROTC라서 받는 훈련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것이 단순한 군사훈련이 아니라 향후 바다에서의 승선 생활을 대비한 규율 훈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2주는 말 그대로 혹독했다.

군대 훈련소보다 더한 고된 일과가 이어졌고,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입학식 날, 군기 바짝 든 제복 차림의 신입생들 틈에서 나는 홀로 외로움을 느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와서 축하를 받았지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그 자리에서 나는 그저 부동자세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내 대학 생활의 첫 장면이었다.


훈련은 계속되었다.

규율과 통제, 그 속에 우리는 천천히 ‘바다의 사나이’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수업과 ROTC 훈련, 그리고 빡빡한 기숙사 생활.

타 대학의 낭만이나 자유 같은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의 하루는 정해진 시간표 안에서 철저히 관리되었고, 밤이면 군대식 기합과 구타 속에서 하루를 마감하곤 했다.

그런 환경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선배들도 모두 그렇게 버텨왔다고 했다.

졸업하기 위해서는 그 규율을 견뎌내야만 했다.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바다를 향한 원대한 꿈보다, 가난과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곳에 온 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불평보다는 적응이 먼저였다.

나 역시 점차 그 환경에 익숙해졌다.

울릉도와 죽변에서 바다를 보며 자란 탓인지, 배와 파도, 제복의 냄새가 낯설지 않았다.

그저 고된 훈련과 빡빡한 생활 속에서도 묵묵히 나의 길을 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등록금은 간신히 집에서 마련할 수 있었지만, 책값과 용돈이 항상 문제였다.

생활비가 모자라 늘 허기졌고, 주말 외출은 사치였다.

그럴 때면 나는 ‘학교 조도의 귀신’이 되어 교실에 남거나 기숙사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 나는 생존의 요령을 하나둘 터득했다.

주말 외출을 할 때 버스 토큰 하나 없었지만, 동료에게 빌리거나 얻어 나갔다.

그렇게 나가서는 어떻게든 저녁밥을 얻어먹고, 술 한 잔에 마음을 달래며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 다시 학교로 돌아올 때면 신기하게도 주머니에는 또 토큰 하나가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지만, 그것이 그 시절 내 방식의 ‘생활의 기술’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대학 생활에 적응했고, 2년의 시간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누군가는 그것을 ‘고된 훈련의 나날’이라 했지만, 내게는 그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가장 현실적인 배움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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