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살아가기 시작했나
좋은 선택이 낳은 결과
한국해양대학교 승선학과(항해·기관)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사관학교와 비슷한 규율 속에서 생활해야 했기에, 학칙은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과실점수’와 ‘선행점수’ 제도가 있었지만, 선행으로 점수를 받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고 대부분은 과실점수를 받았다.
과실점수의 한도는 학년에 따라 달랐다.
1학년은 300점, 2학년은 250점, 3학년은 200점, 4학년은 150점이었다.
이 점수를 초과하면 누구든 예외 없이 퇴학이었다.
작은 잘못은 10점에서 20점 정도였고, 벌칙으로는 주말 상륙(외출) 전 매를 맞거나 군복을 입고 태종대까지 구보해야 했다.
중대한 잘못으로 분류되는 B급 과실은 한도의 절반, 즉 100점이 넘는 점수가 부과되었고, 상륙 금지나 정학 처분으로 이어졌다.
A급 과실은 퇴학이었다.
한 학과에 200명이 입학해 졸업할 때 185명 정도만 남는 걸 보면, 그 규율이 얼마나 엄격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학년 1학기, 학교의 큰 축제인 ‘적도제’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평소 기숙사 내 음주는 금지되어 있었지만, 축제 기간만은 예외였다.
그날 밤, 술에 취한 4학년 선배 한 분이 구관 기숙사로 올라가던 중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다들 보고도 지나쳤지만, 나는 그 선배가 안쓰러워 등을 두드려주고 방으로 모시고 가 누워 드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선배의 방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구관 5층이었고, 계단은 가파르기 짝이 없었다.
업고 올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때가 마침 저녁 순검(점호) 시간이었고, 선배의 룸메이트는 내가 대신 순검을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고민 끝에 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선택이 화근이 되었다.
내가 내 방에서 점호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이탈자’로 간주되었다.
결과는 B급 과실 150점. 상륙금지와 구보 벌칙이 동시에 내려졌다.
단지 취한 선배를 도와드린 일이었는데, 결과는 너무도 가혹했다.
그 일 이후로도 비슷한 오해와 억울함이 몇 번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과연 옳은 일을 한다는 게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남을 도우려다 오히려 손해를 본 경험은 내게 오래 남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남을 구하다 목숨을 잃는 의인들도 있다.
그들의 희생은 높이 평가받지만, 정작 본인은 모든 것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온다면, 넌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마다 마음속에서 대답이 들린다.
“그래도, 똑같이 할 것이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때의 나는 어리석지 않았다.
다만, 조금 일찍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