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살아가기 시작했나
첫사랑의 아픔을 뒤로하고
부산에 처음 내려오던 날, 바다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나를 맞아주었다.
울진의 바람이 산 그림자를 품고 불어왔다면, 부산의 바람은 소금기를 머금고 있었다.
쓸쓸함과 자유가 반씩 섞인 바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던 스무 살의 나에게 이상할 만큼 따뜻하게 파고드는 바람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무엇인가를 잃을까 두려워했지만, 사실 잃을 것도 많지 않았다.
아버지의 술기운, 고향에서의 막막한 방황, 기숙사에서의 낯선 불안.
가난은 성격을 만들고, 외로움은 행동을 만들었다.
그렇게 대학 1년이 흐르고, 다시 봄이 찾아왔다.
어느 수요일, 남포동의 작은 커피숍에서 동기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앞 테이블의 소파에 앉은 세 명의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나는 결국 용기를 내 그들에게 말을 걸었고—
그 중 한 명, 말없이 앉아 있던 조용한 여학생이 내 옆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그녀, 민정이었다.
첫마디는 의외로 거칠었다.
“이런 인연 흔치 않은데, 그냥 같이 하면 되겠네.”
투박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말투였다.
그녀는 꾸밈이 없었고, 매끄럽지도 않았고, 대신 깊었다.
그 깊이를 나는 어느 겨울부터 조심스레 알아가기 시작했다.
추운 날이면 기숙사 창문에는 김이 서렸고, 벽을 치는 바람 소리에 어린 시절 헛간에서 책을 읽던 겨울이 떠올랐다.
다만 그때와 달랐던 건—이번 겨울엔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2학년이 되어서야 나는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말없이 걸어도 좋았고, 말을 해도 좋았다.
어느 날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사람이 말 안 해도, 옆에 있는 것만으로 살 것 같다는 느낌 받을 때가 있다.
나한텐 오빠가 그렇다.”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을 울렸다.
내 인생에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우리는 연인이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랐고,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가까웠다.
주중에는 그녀가 학교로 찾아와 바닷가를 함께 걸었고, 주말이면 통도사나 밀양 어귀의 조용한 마을을 함께 돌아다녔다.
을숙도의 갈대밭도, 김해공항의 활주로 끝도 둘이서 함께였다.
그 시절의 바람은 언제나 우리에게 등을 기대라고 말하는 듯했다.
추운 겨울, 그녀는 뜨개질한 털 조끼를 건네며 말했다.
“제복 얇아서 춥겠다. 이거 입고 다녀라.”
그 작은 배려 하나가 그해 겨울 가장 따뜻한 불씨가 되었다.
편지도 종종 왔다.
길지 않은 문장들이었지만, 나에겐 세상의 어떤 편지보다 소중했다.
“바람 많이 분다던데, 감기 들지 마라.”
“밥 굶지 말고. 주말엔 순두부 먹자.”
기숙사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그 문장들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숨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닷바람이 유난히 매섭던 초겨울의 오후 나는 언덕길에서 그녀에게 말하고 말았다.
“민정아… 나 너 좋아한다.”
바람이 말끝을 가져가듯 크게 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근데 나도 좋아한다.”
그 말에 세상 모든 불안이 잠시 멈춘 듯했다.
그러나 행복은 생각보다 짧게 지나간다.
3학년이 되어 여름방학 동안 원양 실습을 나가게 되었고, 출항 날, 항구에는 가족도 친구도 없이 민정 하나만이 나를 배웅하러 왔다.
고추장과 멸치 한 봉지, 그리고 잘 다녀오라는 말. 그녀의 손끝이 마지막으로 스쳤고, 나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과 캐나다, 알래스카를 돌았다.
그리움은 바다 위에서 오래 보관되는 법이다.
그러나 돌아온 항구에는 그녀가 없었다.
집에 전화하니 동생이 전화를 받았다.
“언니… 서울로 갔어요. 직장 옮겼어요.”
너무 갑작스러웠다.
출항 전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녀의 집을 찾아가 물었지만
아무도 확실한 말을 해주지 않았다.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만 느껴졌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연락은 없었다.
그러다 개학을 앞두고 받은 편지 한 장. 서울에서 잘 지내니 걱정하지 말라는 짧은 내용. 더는 만나지 말자는 말. 나는 혼란에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서울 어딘지 몰라도, 다 뒤져서라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실마리는 없었다.
주말이면 그녀의 집 앞에 가서 원망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감정을 술에 실어 내뱉곤 했다.
철문을 발로 차고 울부짖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문을 열고 나와 나를 달래주었다.
그 집에서 돌아오면 더 허무해졌고, 잊으라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정의 여동생이 학교로 찾아왔다.
바닷가 언덕길, 민정과 처음 마음을 확인했던 그 자리에
우리 둘은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가 울며 말했다.
“오빠… 사실 언니… 백혈병이었어요.”
“오빠 실습 떠나고 다음 날 갑자기 쓰러져서… 서울 큰 병원 갔는데… 한 달도 못 버텼어요.”
“말하면 오빠가 더 힘들까 봐… 숨긴 거예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조차 처음엔 나오지 않았다.
바람만이 우리 둘 사이를 지나가며 울고 있었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왜 갑자기 떠났는지, 왜 그토록 짧은 편지 한 장만 남겼는지, 왜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는지. 나는 겨울바람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니는 혼자 있어도 잘 견디는 사람이라… 괜찮을 거다.”
그녀는 사실 나보다 더 외롭고 더 아픈 사람이었는데 나는 끝내 알아주지 못했다.
쇠약해진 몸으로 마지막까지 나를 걱정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귤 한 조각 향이 스쳐오면 나는 그 겨울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나는 괜찮아 보여도… 사실은 많이 힘들다.”
그 말이 지금은 이상할 만큼 따뜻하게 들린다.
그 말이 사랑이었고, 그 말이 이별이었고, 그 말이 우리 젊음의 전부였다.
그렇게 민정은 내 삶에서 가장 조용하게 와서 가장 오래 머무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