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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ye Kazu.!

Kazu 형 과의 아쉬운 작별

by 여행가 박진호

3주 차에 접어드니 슬슬 초심이 흔들리는 위기가 찾아왔다. 수업에 빠지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도 사람인지라 사탄의 유혹을 받았다. 하루 정도는 쉬고 놀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고 마침 명분도 생겼다.


하루는 자고 일어났는데 몸이 으슬거리고 기침이 났다. 몸살감기인가? 오늘 드디어 빠지는 날인가? 학교에서도 아프면 쉬어도 된다고 했다. 10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수없이 생각이 오고 갔다. 그래 오늘 하루만 쉬고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수업 듣자! 아니야 무슨 소리야 아파도 수업은 가야지! 이 두 세계관이 대립하는 사이 룸메이트인 주성이는 이미 씻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본능이 나를 이끈 것일까? 내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화장실로 향했고 씻고 옷을 입었다. 한국에서 마스크를 가져오지 않은 터라 주성이에게 마스크를 빌렸다. '너 진짜 괜찮아? 아프면 쉬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걱정해 주는 주성이에게 괜찮아 이따위 고통에 질 순 없지~ 약간의 허세가 담겼지만 나의 진심을 표현했다. 그렇다 나는 나에게 지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더구나 독한 마음을 먹고 온 언어연수이기에 이 정도 몸살로 인한 결석은 그저 핑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등교했다. 혹시 모를 전염을 대비해 밥을 혼자 먹고 말도 최대한 아끼며 그날 하루를 보냈다. 막상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다 보니 아픈 건 어디로 갔는지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들었다. 수업 진도를 거의 다 나간 Abed와는 수업 대신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빙고 게임을 하기도 하고 주제를 정해두고 영어 대화를 하며 모르는 표현들을 물어보았다.

빙고를 너

그룹 클래스에서도 최대한 밝은 얼굴로 한마디라도 더 하려 했다. "진호 님 어디 아프세요? 기침을 계속하시네요?" 아ㅎㅎ That's okay~ I just got a cold..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이 나를 걱정해 주며 한국어로 묻는 질문에 웃으며 영어로 대답하며 괜찮다는 것을 어필했다. 중간중간에 기침은 났지만 그럴 때마다 Excuseme를 연신 내뱉었다. 선생님들도 몸살에 걸려도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온 나를 기특하게 여겨주었다. 그래 이런 하찮은 고통이 나의 열정을 막을 순 없다!


This pain can never stop my passion! I don't want to absent! So, Let's study hard!! 약간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그날 하루를 보내고 결국 집에 돌아가서 학교에서의 피로를 직격탄으로 맞고 장렬히 전사했다. 어찌나 아프던지.. 그저 내 침대에서 시체처럼 누워 있다가 잠에 들었다.




#Goodbye Kazu..

9시가 조금 넘어서 잠에 든 것 같다. 눈을 떠보니 시간은 5시 40분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질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오히려 어제보다 더 으슬 거렸고 기침도 묵직해졌다. 또다시 사탄이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거실로 나가니 밤에 잠을 설쳤는지 태관이가 반 시체가 되어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나: 태관아.. 벌써 일어났어? 형 아파 죽을 것 같다...


태관: (선우정아 도망가 자를 틀며) 형.. 저도요...


나: (웃으며) 조금만 참자.. 조금만 ㅠㅠ


학생들 모두 3주 차 중반에 접어드니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환자가 나왔고, 수업에 빠지는 학생들이 늘고 있었다. 나도 몸은 안 좋지만 오늘은 학교에 반드시 가야 한다. Kazu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이곳에서 공부를 하던 Kazu가 이제 일본에 돌아간다고 한다. 이럴 때면 시간이 참.. 야속하다. 아직 서로 나누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Kazu는 이곳에서 일본인 매니저 일을 했었는데, 잠시 일본에 돌아가 일을 본 후 9월에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우리와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기에 같이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은 밖에 식당으로 나가서 사 먹기로 했다. Kazu 덕분에? 오늘은 사탄의 유혹을 제법 쉽게 이기고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어제는 그래도 막상 수업을 하니 몸도 안 아프고 괜찮았는데 오늘은 아니다. 4교시가 끝나기 전까지 너무 아팠고 결국 Gemma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10분 정도 수업을 일찍 끝낸 후 사무실에서 종합 감기약을 받아서 먹고 공강 시간을 이용해 한 시간 정도 잠을 잤다. 약 덕분인지 어느 정도 괜찮아진 몸과 함께 남은 수업 시간에서는 정상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웃는 얼굴로 수업에 임하지는 못했지만 역시 이 고통에 지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버틴 것 같다.



수업이 끝난 후 Kazu와 Justin을 만나 필리핀 현지식인 망이나살을 먹으러 갔다. Kazu의 송별회 치고는 다소 조촐한 음식이지만, 내가 있던 곳이 시골마을이었던지라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소소한 송별회로 망이나 살을 선택했다. 식당에서 그동안 못다 한 얘기를 했다.



kazu에게 한국으로 한번 꼭 다시 오기로 약속을 받았고 나도 반드시 일본에 가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우리는 24년 6월 오사카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Kazu에게 고마운 것이 정말 많다. 나의 영어 말동무가 되어 주었고 언제나 친근하게 다가와서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매일 같이 밥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눴고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작별을 한다.


Goodbye Kazu.. See you!!

Kazu는 나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꼭 한 두 살 밖에 차이 안 나는, 친구 같은 마음씨 좋은 형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제 어느덧 3주 차가 지났고, 언어연수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과연 나의 언어 연수의 마지막은 어떻게 장식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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