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비교적 가장 최근작 버닝.
이전 작인 초록물고기,시,밀양과 비교하면
훨씬더 운문에 가깝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너무 많은 생략, 너무 많은 여지, 너무 많은 빈칸들이 나열되어서
버닝을 봤던 사람들은
"그래서 뭐 어쨋다는거냐.."
라고 되묻곤한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물었던 사람들은 늘 세상이 명확한 답이 존재하길바란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불확실성 투성이이다.
특히나 현대물리과학에서 가장 큰축을 이루는 양자역학에서 조차도 이 불확실성이 큰핵심이다.
모든것이 불확실한 세상
다들 알고 있을것이다.
당장내일 어떤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초조하곤한다.
그래서 답을 찾아내고, 나의 판단에 확신을 갖고 살아가려하는건 어쩌면 자기의 보호적 본능이 작용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유아인씨는 소설가 지망생이다..ㅎㅎㅎ
그런데 본인은 어떤 소설을 쓸지 잘 모르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 잘모르는 사람이다.
또 여자 주인공 혜미도
본인이 어떻게 살아갈지 잘모르는 사람이다.
그저 마냥 아프리카로 삶의 의미를 찾으러 갔지만
거기서도 실망만가득한채 돌아왔다
극중에서는 막상기대를 품고 갔더니 쓰래기만 있더라
또다른 주인공 벤.
부유한 삶을 살고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지내는데
삶의 이유나 목표도 없고 그냥
저냥 살아가고 재미라는 쾌락에 그저 몸을 맡기는 재벌2세로 나오지만
주어진 정보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 사람이 왜 부자인지 직업이 뭔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냥 저냥 아무것도 모른채 칠흑같은 어둠에서 등불하나켠채
발앞만 간신히 보이는 어둔 밤길을 그저 걷는것처럼
등장인물들은 아무것도 세상에서 의미를 찾아보려하지만
모든것이 미스터리로만 남겨져있다.
풀리지 않는 것 ,그것이 미스터리의 본질이다라고
감독은 말하는것만 같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목적이나 이유를 찾는다해도
궁극적으로 아무의미 없는 몸부림인것만 같을때가 있다.
일종의 허무주의 니힐라즘에 가깝다
원작인 하루키의 소설에서 가져왔다는데
나는 보자마자 하루키스타일임을 확실히 알았다
연애도 자유와 연기처럼 허무해지고 아무리 연애하고 사랑을 해봤자 채워지지않는 갈망과 욕구는 사람을 허무하게 만든다
잠시 플래시메모리처럼 연애라는 감정에 지나갔다가 다시 이네 공허로 가득차는 그 특유의 하루키 스타일 혹은 왕가위감독의 중경삼림, 아비정전과 같은, 연애허무주의 같은 덧없음이 물신 풍겨 나긴한다
특히나 이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왜?! 그래서 뭐라는 거야?!라고 분명히 생각할것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일부러 여백을 둬서 진짜 영상을 시처럼 만들었다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든다
모든이야기가 비유 메타포로 이어져 있어서 당장에 이해가 안되는게 당연한것처럼보인다
그래도 여러가지 상징 중 하나
재벌2세같은 벤의 악취미
비닐하우스를 2개월마다 태우는 취미
비닐하우스가 쓸모 없어서 그냥 재미삼아 태운다는데
쓸모없는지 아닌지는 벤이 태우기전에 결정하는게 아니라 그저 태우고나서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는것일뿐이라며
행위의 자기합리화라던가 정당성을 그저 부여하기만 하면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단지 재벌2세들만그런것이 아니라
사람간에 어떤 우위를 점한사람이
그저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또 여기서 비닐하우스가 진짜 비닐하우스 일수도 있지만
자신의 돈이나 지위 사회적 우월감을 바라보고 따라온 여자들을 비유하기도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혜미같은 여자는 재미있다며 세상에 혜미같은 여자만있는건 아니지만 혜미 너는 재미있다며 일부러 그런사람들만 만나고 있는 듯하다
벤과 유아인을 비교해보면 더욱그러하다
벤은 그저 여자가 계속바뀌는듯하고
유아인은 혜미하나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밴은 포르쉐 유아인은 일톤포터
벤은 반포동 유아인은 파주 국경근처
벤은 여유 유아인은 절박함
서로를 극명하게 극단으로 두니 더욱 두드러지게 노골적으로 분노의 감정을 형성시킨다
그래서 벤이 혜미를 죽였는지 아닌지 알수 없지만
벤이 비닐하우스를 태우겠다고 유아인에게 말한후에 혜미는 사라진다
그러고 나서 또다른 비닐하우스를 찾아나선 벤은 또다른 혜미와 유사한 여자와 연애를 하게되는데 또 똑같은 반복적인 행동패턴을 보이게된다
그걸보게된 유아인
벤의집에서 실종된 혜미의 손목시계를 찾고 혜미의 고양이로 추정되는 것을 바라보게 되며
벤이 혜미를 비닐하우스 태우듯 죽였다고 생각하며
벤을 살해하게된다
벤이 혜미를 죽였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뭐라고 단정짓는 것 자체가 영화의 층위나 두께를 얇게 만드는 것이다
두가지를 다생각해볼 수 있게 만드는 것자체가 문학이나 영화를 더 풍부하게 만든다
유아인이 벤을 살해한것도
세상에 대한 억울함 그리고 왜그런지모르게 이미 정해저버린 삶의 분노의 표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혜미를 벤이 죽였다고 생각해서 벤을 죽였던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의 세상도 마찬가지 일것같다
단한가지 단면으로 사람을 판단해서
여러가지 가능성을 배제하려하지만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이사람의 과거의 기억,어린시절의 꿈, 친구와 나눈이야기들, 바라보는 삶의 가치관, 말할때 웃는 미소를 만들기까지 형성된 마음가짐, 현재현실의 불만, 미래지향적인 계획,
여러가지 복합적인 생각과 감정이 녹아내서 말한마디 한마디에 묻어내는것일텐데
그걸 단한가지로 단정지어서 편견으로 사람을 대해버리면 그것만큼이나 세상을 재미없게 사는 일은 없을것이다
그래서 다들 버닝을 보면 왜?!그래서 뭐 어쨋다는거지?!라고 생각하기보다
유아인씨가 보이지않는 영화속여백에서
유아인씨는 어떤 마음을 먹었을까
벤은 도대체 어쩌다가 저렇게 살아가게 된걸까 왜 비닐하우스를 태우는것에 흥미를 느낀걸까
혜미는 유아인씨에게 왜나타나지 않게된걸까 죽은걸까 살해당한걸까 아니면 잠적해버린걸까
라고 곱씹어 보는게 문학이나 영화를 더 깊고 재미있게 보는 습관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