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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종 Dec 04. 2021

타인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기

인생의 의미라던가 행복하는 방법을 몰라서 두려움에 

수많은 사람들이 우왕 좌왕 하는 것만 같다.


사실 영원한 숙제처럼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답이 없는 것처럼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내려왔던 

미궁처럼 보이는 이야기이다.


어떤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라며 선을 그어주며

가이드를 제시해주곤한다.

그래서 거액의 강연료와 수업료를 쏟아내며 

따라가곤하는데


살면서 점점더 드는 생각은

그렇게 강연해주는 사람이라던가 리드해주는 사람들도

사실 그런 행복이라던가 의미라던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던가

그런 기준을 잘 지키지 못할꺼라는 생각이들었다


더 나아가면 그 사람들도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그런생각이 들었냐면


내가 예전에 중학생때면 고등학교 형누나들이 엄청 대단해보였고

막 내가 건드리지도 못하는 문제를 풀어낼때면 내가 다가가 힘든 사람들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나이가 되니까 그렇게 대단한것이 아니었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보인 이등병시절에는 병장이 엄청 대단해보였다.

그런데내가 말년 병장이 되고나니까 

그렇게 대단한것이 아니었고


사실 그렇게 그렇게 한단계 한단계 계단위로 오르다보면

사실 나는 대단한게 아닌데 나를 우러러 보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반대로 한단계 위에 있는 사람이 나를 아래로 보는 사람도 있기도 하다.



사실 단계나 계단이란 것이 

어느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 쌓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본인의 끝없는 의구심, 향상심, 그리고 왜 라는 본질적 질문을 묻는가

에서 오는 전진성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왜라는 질문에 그리고 항상 궁금해하고 항상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자세를 지닌다면

그건 나보다 나은 삶이라고 생각해 왔다.

또 나보다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왔다


어제보다 더 앞으로 나가려는 마음이 

제일 중요한데

그러면 자연스레 다음계단으로 나아가는 것인데


반대로 나가려는 마음은 없이 

다음계단으로만 가려고 할때

문제가 생긴다.


다음계단에 있는 사람들 말만 믿고 그냥 가다가

이게 아닌데 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본인이 직접 찾아보고 경험해보고 느껴보지 않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는 말에 따라가다 보니.


왜라는 질문 하나 없이 맹목적으로 틀에 맞춰 가다보니


한사람 한영혼 모두다 각기 다른데

하나의 틀에 끼워 맞추다보니 

당연히 속상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느 순간 유명한걸로 유명한사람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이 들면.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요즘들어 더 유명한 걸로 유명한 사람들이 많은것 같다.

본인이 유명해진것으로 거기에 안주해 버리고

그 유명세로 더 유명해지는 속이 비어버린것들을 보면 뭔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옛날에도 이집트 파라오가 자신을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사람들에게 그 막대한 노동을 시키며 자신을 신의 위치에 올려 놓은것을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겉 모양만 바뀌었을 뿐이지 원리는 같은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책을 보든 영화를 보든간에

결국 그래서 나에게는 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나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갈까?!


다시 서두의 화제로 돌아가면

어떻게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그건 타인이 이야기하는 그럴것이다라고 이야기해주는 삶을 떠나서

내가 직접 체험해보고 느껴보고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는 삶


그런 삶에 정해진 정답은 없고

정답은 그때그떄 바뀌기에

아주아주 재미있기도 하다.

인생이 칼같이 정해진것이 아니라는것을 인정하고 나면

또 길이라는것이 계속해서 바뀔수도 있고

그런것을 인정하게되면 굳이 특정한 것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버린다.




다른사람은 대세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단순히 대세에 편승하는게아니라

그렇다고 무조건 대세를 거르는 것이 아니라


대세에 따른다면

나는 이런이런 이유 때문에 공감해


대세를 역행한다면

혹은 나는 이런이런 이유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않아.


결국 대세와 시대흐름 그런 수많은 정보를

내가 직접 고르고, 수정하고, 조합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그런 사고력, 조응력, 감응력을 기르고 감수성 지각력을 기르는

그런 마음 가짐이나 삶의 태도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그렇게

왜라는 물음과 거기서오는 방향성이 정해지게 되면

내가 움직이는 움직임에 두려움이 없게된다.


마치 자율주행 프로그램처럼

인생이란 문제에 또 부딪히게되면

또 다시 왜라는 질문과 더불어오는 방향성을 다시 수정하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무한하게 반복하면 거기서 오는 

누가 정해주지 않은 나만의 길을 만드는 능력과 시야가 넓어질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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