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학의 자유의지와 예정론에 대해
대학교 1~2학년 시절에
중고등학교 CA강사로 마술강사로 일했던 적이 있다. 세화여고랑 일원에 로봇고등학교에서 일년 반정도 일했었는데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사실 마술을 좀 했었던 적이 있다.
마술이 진짜 극한의 재능과 극한의 노력이 결합해야 빛을 발하는 진짜
완전 예체능의 끝판왕이라 나는 취미 정도에서 끝내긴 했다.
지금도 한 1시 간만 연습하면 5분짜리 루틴 공연도 할 정도는 된다.ㅎㅎㅎ
아직도 엠비셔스 루틴 정도는 할 수 있다 ㅎㅎ
그중에서도 마술 루틴의 시작인 포스(FORCE).
포스라는 기술은 상대가 본인의지로 카드를 뽑지만 사실 관객은 마술사가 원하는 카드를 강제로 뽑게 되는 기술이다
포스만 해도 클래식 포스, 노말 포스, 힌두 포스, 체크 포스, 패스 포스, 셔플 포스, 더블카운트 포스 등등 수많은 포스가 존재하고
사실 포스만으로도 수많은 루틴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기술이다.
오랜만에 마술 영상울 보는데
사실 밑의 영상의 마술사분의 기술적인 것 테크닉적인 부분은 내가 잘 모르지만 관객은 자신의 의지로 카드를 뽑지만 사실 마술사가 원하는 카드를 뽑는 포스라는 기술이 들어간 게 아닌가 깊다(솔직히 밑에 영상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된 건지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을 뿐)
마술사님께 리스펙을 표합니다 ㅎㅎ
기독교 신학에서
자유의지와 예정론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 있다
자유의지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개념이고
예정론은 모든 일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이 양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대학생 때 마술을 포스를 하면서 깨달았던 것은 마술사인 나는 모든 것을 예정된 루틴으로 움직이지만
관객은 본인이 본인의지로 카드를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성경 속에는 여러 가지 제비뽑기 의식이 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카나안 땅을 나눌 때 제비뽑기로 땅을 나누었고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마지막 열두 번째 제자를 제비뽑기로 뽑아냈다
그런 제비뽑기가 마치 운에 의해 아무런 인과성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신의 섭리에 신의 예정에 이미 결정된 사실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로 무언가 선택한 것이 사실 거대한 신의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성격 스타일 방향성 수많은 변수들과 데이터 분석의 결과이고
그러한 선택이 수많은 변수와 수많은 차원의 방정식에 의해 탄생된 결과라면
우리의 선택은 신의 섭리 안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아 그래 그럼 내가 내 의지와 반대로 선택해보겠어
아니 내가 선택했던 것들 과감히 포기하고
전혀 다른 선택을 해 보이겠어
라고 해도
그것마저 예정되어있는 사실이라면
다시 마술로 돌아와서
만약 관객이 마술사가 포스를 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그것대로 마술사는 루틴을 바꿀 수 있어서 다른 트릭으로 넘어가고 자연스럽게 거기서 또 다른 마술로 넘어간다
기존의 예정된 루틴을 포기하고 다른 루틴으로 넘어가게되는것이다
사실 예정론은 그렇게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예정되어있는 미래를 그저 걷는 것이라면 우리의 노력은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의 선택을 달리한다면 그 뒤에 신의 예지가 바뀌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음 이게 뭔 말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기독교의 신은 카이로스의 시간
즉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볼 수 있고
그렇다면 미래 시점에서 내가 어떤 의지로 A을 선택할 것을 신이 현재 시점에서 보았다
그래서 그저 그 사실을 말한 것이 예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 시점에 나의 의지가 바뀌어 나는 B를 자유의지로 선택했다면
신은 모든 시간을 초월해서 현재 시점에 미래의 B라는 선택을 보고
그저 B를 말하면 그것이 예언이 돼버리는 것이다
마치 마술사가 관객이 포스를 깨고 다른 선택을 하면 다른 루틴의 다른 예언 마술이지만
그 안의 마술의 내용은 전혀 다른 마술이 된다
우리의 선택이 그렇다면 예정론 속에서 무의미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예정된 사실일지라도 우리의 자유의지를 통해 하게 된 선택은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그렇기에 숙명론적 세계관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어차피 결과는 정해졌잖아 이제 돌이 킬 수 없어
라는 수동적이고 나태한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그런것들은 바보같은 일이고 후회를 불러오는 일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
그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예정론은 허무주의 숙명론으로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
신은 모든 시간을 초월한다는 개념을 넣는다면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이지만
그 안의 선택은 중요하게 된다
우리가 선택을 달리하면 다른 결과가 나오고
그로 인해 신의 예정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