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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Apr 25. 2022

더 이상 쫓기지 않을 때

나는 항상 쫓기듯이 살아왔다.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는 걸 스스로 용납하지도 못했지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그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쫓기며 살아가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나는 왜 그렇게 모든걸 빨리 겪으려고 했을까?


항상 과거의 나는 최선을 선택해왔다.

물론, 빠른 년생으로 학교를 다니며 모자란 머리로 수학이라는 과목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통 받아왔던 것은 온전히 부모님의 선택이었으니 제외해야겠지만.

그렇게 내가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걸 어렸을 때 부터 알았기 때문일까?

부단히 무리에 끼려고 노력했고 공부도 나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대학을 선택할 때도 현실적으로 부담이 크게 되지 않는 진로를 골랐고, 남들은 한번쯤 생각해봤을 재수는 입밖으로도 꺼내지 않았다.

물론 재수는 내가 하기 싫었다.

그 지겨운 공부를 더한다고 한들, 글쎄 훨씬 더 좋은 대학을 갈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


수능을 보기전에 인생사 모르는 노릇이니 카드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놓고 싶다는 생각에

관심도 크게 없었던 사관 학교 시험도 봤다.

1차는 무난하게 통과했지만,

역시 신이라는 것은 당시에 존재했는지 나는 2차 체력검정에서 보기 좋게 탈락했다.

남쪽에서 몰려온 무리들 중에 단거리 달리기 1등을 했지만, 장거리를 뒤에서 3번째로 들어오는 기괴한 성적을 내고나서는, 차마 학교에 체력검정을 준비하지 않아 떨어졌다는 말을 할 수 가 없어 그날은 부모님께만 솔직히 말씀드리고 학교를 하루를 재꼈다.


그때 부터였을 지도 모른다.

내가 무언가를 바라면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깨닳았으니까

나는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 안에서 항상 쫓기듯이 기회를 찾았고 그게 타이밍이라면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누군가는 나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적어도 스스로 무언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할 때,

단 한순간도 물러선 적은 없었다.

귀찮다는 핑계로 모른다는 이유로 하나둘씩 기회를 날려버리기에는 나한테는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대학을 다니며 우연치 않은 기회에 한국에서 정말 보기힘들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시는 분을 알게되었고, 일면식도 없지만 그일에 관심이 있다며 그분에게 이야기를 건 순간부터 내 인생 모래시계는 좁은 틈사이로 쉴새 없이 경험이라는 모래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직장을 가지는 것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좋은 기회들을 만났고 그걸 어떻게든 이어나가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모래시계에 있던 모래가 아래로 다 깔려버린 듯, 더 이상 모래가 흐르지 않는 다는 느낌이 든다. 부단히 노력하고 원하는 것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래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내 모습만이 유리병너머로 푸르스름하게 보인다.

하지만 덕분에 더 이상 나는 쫓기지 않는다.

허우적대며 모래속에 있는 내가 과거에는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이제는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번에는 내가 모래시계에서 빠져나오려고 아둥바둥대는 게 아니라,

누군가 나의 모래시계를 다시 한번 뒤집어주는 것을 기다려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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