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에 온 지 2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인터넷으로 물건들을 주문하고 테스코에서 운송비를 따로 내가며 장을 보는데 익숙해졌다.
이곳의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빠르게 일몰이 시작되고 더 습습해져만 간다.
어둠이 드리울수록 관광객들이 열광하는 부다페스트의 노란 등은 빛을 뿜어내다 못해 국회의사당 위에는 가 가을 들녘에서나 볼 수 있는 황금빛으로 적란운을 만든다.
날이 추워지고 해가 짧아지니 부다페스트가 자랑하는 황금빛은 밤이 지나고 나면 바닥으로 떨어져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존재를 잊지 말라며 소리치기도 한다.
강물을 머금은 공기는 바다를 잊을 정도로 짙게 깔리기 시작하고, 영국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이 동네만큼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나라라면 셜록홈스의 팬인 나조차도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강아지와 함께 발을 맞추며 걷기도 하고 때로는 낯선 이를 보고 달려드는 강아지의 목줄을 당기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강아지들의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이 아닌 헝가리일지도 모른다.
서울에서는 2호선이라는 자물쇠에 잠긴 것처럼 그 이상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마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어려웠던 건 그 어디를 가도, 어떤 시간에 나가도 도시가 나라는 존재가 아닌 타인의 존재로 꽉 차있어 나만의 생각할 장소가 없었다는 것.
광주에서나 부산에서나 시간과 장소를 조절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었지만 서울에서는 내가 아닌 다른 방황하는 사람들도 자신만의 공간을 찾기 위해 항상 길거리나 어느 장소에나 존재했다.
이곳은 다를까? 인구 수로나 도시규모로 보나, 이곳의 밀도는 낮고 밤이 되면 등불 아래 서 있지 않으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길목도 존재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위험하다고 하겠지만 글쎄 다르게 보면 도시에 숨통을 틔울만한 공간이 곳곳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한국에서 보기 힘든 찐한 스킨십도 덩달아서 일어나는 곳이긴 하다.
그러니 불빛 사이에 존재한 공간들은 암흑이면서 도시의 숨구멍이기도 하다.
나 조차도 아마 신혼여행지로 이곳에 왔다면 음식 빼고 모든 것이 낭만적이라며 나이를 먹고 한번 더 오고 싶다고 아내에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도시는 낭만적인 불빛만을 품고 있지는 않다.
곳곳에 설치된 공원과 자의든 타의든 오랜 시간 동안 유지보수되고 있는 건물들,
그리고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가진 언어와 갤러트 힐의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는 곳. 헝가리의 다른 지역이라고 해봤자 몇 군데 슬쩍 발만 담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발을 뺀 시간만큼만 머물렇기에 헝가리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부다페스트는 아이들과 강아지들을 위한 정신적인 여유가 있는 도시다.
갤러트 힐의 놀이터는 한국으로 치면 남산 중입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어 놓은 격이었으니까.
심지어 초입에 있던 놀이터는 오래돼서 폐쇄시키고 중간쯤 갔을 때 놀이터가 있는 것이 충격이었고,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것도 한국인의 눈에는 신기해 보였다.
아이들에게 조금 높게 설치된 놀이기구들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혹시라도 큰일이 날까 봐 지켜보는 건 부모님들 만국 공통이겠지만, 내가 봐도 조금 위험하다 싶을 정도의 높이에서 재잘거리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족과 함께 나와 놀이터에서 놀고 갤러트 힐 꼭대기까지 작은 발로 높지 않은 산을 같이 오르며 추억의 한편을 쌓아가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안타깝게도 갤러트 힐은 공사 중이어서 우리도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입구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의 전경은 높은 건물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장관을 선사했다.
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좋은 점만 있냐고? 아니, 이들에게는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는 그리고 터부시 되어가는 흡연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길가에서 흡연하는 건 당연한 것이며 2명이 겨우 비좁게 오갈 수 있는 등산로에서도 한 대씩 말아 잡수신다는 뜻이다. 심지어 이들의 coffe table은 dohányzóasztal이라 하며, 한국어로 치면 흡연 테이블이다. 얼마나 그들이 흡연을 자신들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도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흡연하는 것에 비해, 적어도 버스정류장이나 흡연을 하는 곳에는 쓰레기 통이 있어서 한국의 거리와 얼추 비슷할 때도 있다. 물론 강아지의... 그것을 빼고 말한다면.
아무튼 이 도시는 자신의 매력이 확고하다.
적어도 한 번쯤은 이곳에 와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또 지루해지고 답답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