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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Dec 28. 2022

헝가리에서 김치를 사다

90일간의 김치 저항기

한국인이 김치를 안 먹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를 거라 생각하지만 한 달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외여행을 가도 한국인들의 김치 사랑은 유별나서 반찬용 김치와 작은 컵라면을 챙겨서 먹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니까.

나는 그 정도로 김치맨이 아니지만, 해년마다 종류별로 전라도의 손맛을 제대로 담은 부모님이 보내주신 김치를 충실하게 소비해 나가던 사람으로서 김치 중독자 정도로 나를 소개하고 싶다.


헝가리에서는 김치 재료를 구하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다.

겉절이 정도나 소량을 담그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국에서도 한 번도 김치를 담가보지 않은 나와 아내는 굳이 김치가 필요하냐며 생존을 빙자한 태세전환을 시도했고 나름대로 오래 버텼다.

주변에서 김치를 담가 드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정도의 노력을 해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고,

특히 치즈와 햄류에 치명적인 김치냄새를 한국 냉장고의 4분의 1 크기에 꽉 채워 넣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기에 회사에서 회식을 하게 되면 한식당에서 나오는 김치들로 고춧가루로 점철된 한국인의 붉은 영혼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가뜩이나 해산물이 부족한 내륙국가에서, 나와 아내는 꽤나 오랫동안 이 나라의 고기와 닭 그리고 달걀이 주는 풍부한 맛을 즐기는 쪽으로 식단을 바꿔왔지만,

인간은 잡식의 동물이라 했던가... 

노김치 슬로건으로 90일을 넘겼던 우리는 유튜브에서 김치를 맛있게 먹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보고는 한계가 왔음을 깨닫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다행히, 한인 마트가 부다페스트 내에 꽤나 많이 존재해서 김치를 구하는 것은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다.

완벽한 맛을 낼 수는 없지만 담가먹을 수 도 있을 정도로 재료는 충분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담가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편리하게 담가진 김치를 선택했다.

덕분에 냉장고는 1kg 남짓한 김치를 처음으로 품게 되었고 나는 여전히 김치가 다른 식품들을 자신의 냄새로 전염시킬까 우려 중이다.


참.. 다른 나라의 식단에 적응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함부르크에 가서는 소시지와 햄버거만 밤낮으로 들이부었고, 아침에는 빵과 오믈렛으로 일주일을 버텼더니 다시는 독일에 음식을 먹으러 가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과, 풍부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꽤나 오랫동안 질리지 않게 먹었던 것에 비하면 부다페스트와 함부르크는 이에 비할바가 못 되는 것 같다.

일본은 후쿠오카와 오사카 간장베이스로 만들어진 모든 음식들이 항상 만족스러웠었지만, 베이징은 너무나도 기름진 음식이 많아 차를 벌컥벌컥 마셨던 기억 밖에 없다.

그렇게 각국의 대표도시 음식들은 나의 위장 속에 세계지도를 그려 놓았다.


물론! 부다페스트에서도 입맛에 맞는 음식은 있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굴라쉬는 파프리카맛이 첨가된 육개장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랑고쉬는 설탕이 안 쳐진 꽈배기를 먹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리고 계란과 돼지고기는 한국보다 더 맛있고 깊은 맛이 난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김치 종류만 구분하던 김치맨에서,

다양한 나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커버 사진출처: 티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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