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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Jul 20. 2023

헝가리에 온 지 어느새 11개월

무엇을 느꼈나요?

헝가리에 온 지 어느새 11개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지만 고작 서른 조금 넘은, 

일을 시작한 지 8년 정도 되어가는 과장급에게는 꽤나 길고도 중요한 시간이었다.


여전히 헝가리에서 적응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느린 일처리와 한국보다는 덜 적극적인 고객응대 방식이지만, 다른 나라들도 생각해 보면 한국이 유별난 국가였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관공서에서 필요한 서류를 받는데 3번 정도 반려를 당하고,

헝가리인의 도움을 받아서 4번 만에 필요한 서류를 받았던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음식점에 가도 그들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애써야 하고,

식사가 끝났다고 자리에서 바로 떠나 카운터로 가서 계산하지 않는 그런 문화에도 이제는 적응이 됐다.

음식도 가끔 늦게 나오긴 하지만 그러한 음식점은 항상 조리 전에 말을 해줘서 나의 선택에 배려를 해주는 덕분에 그들의 음식점 문화도 존중하게 됐다.


서울에서의 생활이 극한의 사계절 속에서 변화무쌍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9호선 급행열차였다면,

부다페스트는 노란 트램을 타고 머르기트를 천천히 지나가는 완행열차 같다.

계절이 변하는 것을 천천히 느낄 수 있고, 숨을 쉬기 위해서 공기청정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

언제든지 한강만큼 아름다운 다뉴브강을 몇 분 걸어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점..

그런 점들이 부다페스트 생활을 한잔의 따스한 컵 스프처럼 만들어준다.


물론, 한국인이 없는 동네에서 일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조직 따라 다르다고는 하지만, 한국 클라이언들과 일을 하게 되면서 핵심 컨택포인트로서 역할을 하는 것은,

가끔은 업무 관할에서 벗어난 현지 조직 담당자들과 조정해야 하는 사항에도 개입해야 하고,

현지조직을 설득하거나 한국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 일등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건, 한국에서 정말 겪어본 적 없는 일이기에 누군가 조언을 주기도 어렵다.


기술직으로서 업무를 한다면 조금 다르겠지만,

물류의 주요 축인 인적자원, 물류의 연결고리 그 자체로서 일을 하게 되면 이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된다.

도전적인 업무환경, 계속해서 바뀌는 조직의 상황, 그리고 크게 요동치는 시장 속에서 대응하는 것은

사실 매일이 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난 11개월이 만족스럽다.

이곳에 오기 전에 가지고 있던 해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과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남았는데 앞으로 어딜 가든 무엇을 못하겠는가?

게다가 외국인 아내와 이곳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으며 부단히 노력하는데,

앞으로 더 안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에 대한 나의 접근 법을 바꿔주는 정말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고마운 시간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곳에서 머물며 살아갈지 모르지만,

지루하지 않게 새로운 일들과 새로운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계속해서 나 자신을 불구덩이에 던져 넣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든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까만 숯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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