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끓일 수 있는 미역국

맛있더라

by 도씨


정신연령도 살림능력도 어리고 어린 나는 성인이 된 지 한참인 지금도 요리를 잘 못 했다.

다 커서까지 엄마가 다 챙겨주는 공주님(나쁜 의미의)이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스러지듯 하늘나라로 간 뒤로는 남은 유일한 가족인 동생이 그걸 챙겨주다 조금씩 가르쳐주었다.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해주고, 청소는 청소기가, 설거지는 식세기가 한대도

다 요령과 방법이 있었다. 많았다.

특히 요리는 더 했다. 보스몹이자 최종 미션!

살림의 제일 마지막 단계같은 느낌이었다.

이건 쉽게 가르쳐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솔직히 요리만은 배우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인 동생 부부와 조카와 사는 이상

귀여운 조카를 위해서라도 저녁밥만은 시간이 남는 내가 담당해야 했다.


어리버리 얼떨결에 주방의 장금이가 되기 위해서 쉬운 요리만 급히 찾아서 해봤다.

소고기미역국,콩나물국,수육, 계란국,스파게티,카레...등

아주 쉽다는 것은 다 끓여본 것 같다.


근데 신기한 건 칼질도 서툰 초짜치고 맛이 좋다는 것이었다.

임금님 입맛이라 부르는 조카도 잘 받아먹고, 요리 앞에선 T인 제부도 맛있다며 먹었다.

의외의 소질을 몇십년만에 발견한 것이다.

밑반찬은 엄두도 안 나서 해보진 않았지만, 이젠 조금 자신감이 붙어 조만간 해볼지도 모르겠다.


슬픈 것은 주방에서 고군분투하며 요리를 땀까지 흘리며 해보면서 나는 엄마가 더 그리워졌다.

무엇이든 뚝딱 맛있게 한 상차림을 하는게 우리 엄마였기 때문이다.

못 하는 요리도, 손질 못하는 재료도 없었다.

무엇이든 엄마 요리 재료가 되면 무조건 맛이 있었다. 손도 야무지고 빨랐다.


맛있다 맛있다 하는 소릴 들으면서 그 재주를 한 백만분의 일은 닮았나?

어깨가 으쓱했다.


문제는 그리움 뒤에는 저절로 항상 슬픔이 번져온다는 것인데..

이유는 단 한번도 엄마한테 내 요리를 먹을 수 있게 해준 적이 없단 치명적인 불효의 추억이었다.


미역국도 사서 끓여만 주고, 돈주면 오는 배달 요리로만 엄마배를 채워드렸다.


지금은 맛있는 미역국 정도는 금방 끓여줄 수 있는데

재료가 다 있어도, 먹어줄 엄마가 없다.


가슴이 아팠다.

요리가 더 늘고, 더 많은 요리를 하게 되어도 먹어줄 엄마가 없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우리 큰 공주가 이런 걸 다 했냐고 감탄하고 박수쳐 줄

엄마가 없다.


부재의 실감은 항상 이렇게 일상적인 부분에서 찾아오더라...

찡한 코끝과 마음 끝에 눈물이 조금 났다.


다시 한번 엄마를 배부르게 먹일 한상차림을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럴 일은 영영 영원히 오지 않는 기회일 것이다.

영원한 아쉬움일거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계속 요리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하던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그렇게나 사랑하던 하나뿐인 손주에게 내가 밥을 지어 먹이고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엄마 없이도 엄마의 방식으로 저녁을 만들어본다.

그리고 엄마 닮은 손맛이 나올 때만을 기다린다.

그리운 손맛을 내 손으로 맛 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단 한번만이라도 더 엄마 밥을 먹고 싶지만

이젠 내가 만드는 수 밖에 없으니까.


오늘은 무슨 국에 또 도전해야하나

주부가 아닌데 주부같은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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