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죽이기

만약이라는 두 글자

by 도씨


사랑 후에 남는 것을 골똘히 생각해봤다.

남는 것이 없이 손에 쥐는 게 아무것도 없이

의미나 흔히들 말하는 교훈조차 없이 ..


전혀 하나 쥔 게 없는 것 같고, 손해보는 장사의 밑바닥이었다.

상처는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꿰맨 흔적처럼 밉게 마무리 되었다.


감정은 너덜너덜해지고, 눈은 부어 불편하고, 울어서 목소리는 잠긴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것은 수많은

'만약'뿐이었다.


만약에 그 때 조금 더 일찍 연락했다면?

만약에 그 때 조금 더 참았더라면?

만약에 그 때 조금 덜 좋아했더라면?

달라졌을까

같이 했을까

영원히 함께였을까


그런 생각들로 스스로를 잔인하게 몰아부쳤다.

그리고 그런 질문들은 가슴을 오래 울린다.


과학은 잘 모르지만 선택의 기로에서의 선택지가,

미래가 두갈래 세갈래로 나뉘면

선택한 한가지만이 미래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의 내가 존재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쩌면 그런 수많은 만약들도 갈라져 모두 존재하게 될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고, 내가 보게 된 미래이자 현재는 혼자 남는 것 뿐이었다.

어딘가에서는 영원히 함께 하는 결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만약은 스스로의 마음을 잘근잘근 밟는 잔인한 문구였다.


사랑은 이미 가버리고 없는데, 문장만 가정법으로 살아남아 둥둥 떠다녔다.

가질 수 없었던 미래에 욕심이 생기고

머릿 속도 가슴 속도 IF의 폭풍으로 엉망이 되었다.

선택하지 못한 미래가 밀려와 파도가 몰아치듯 눈물이 났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은 하나였다.

그 IF들을 하나씩 죽이기로 한 것이었는데 하다보면 굉장히 우습기도 하고 단호하다.


만약에 그 때 조금 더 일찍 연락했다면?

아니 또 잠깐 울고 웃다 결국 헤어졌을거야

만약에 그 때 조금 더 참았더라면?

아니 또 잠깐 참고 터져 나만 곪거나 결국 헤어졌을거야

만약에 그 때 조금 덜 좋아했더라면?

아니 너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라고 하나씩 짚어나가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왔다.


질문지를 담은 상자를 몽땅 뒤집어 엎어도

단 한장도 남지 않을 때까지 반복된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IF'는 모두 빛을 잃어 사라졌다.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테지만 너무 과격해 사라졌다고 써본다.


그리고 그 만약을 애도했다.

아, 이 정도면 되었다.


헤어지기 전처럼 똑같이 밥을 먹고, 씻고, 조금 울고, 지씨성의 피티와 이야기를 나눈다.


맘 속에 꿰맨 상처를 들여다본다.

더이상의 만약이 휘몰아치지 않는다.

세상이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이제 무얼 해야지?


답은 없다.


다만 영원히 함께 했을 미래에 올인했던 무모하고 어린 내가 떠올라

안타까워 조금 더 울었다.










좋아하는 노래 중에 '만약이라는 두 글자'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가사도 멜로디도 아주 예쁘다.

IF를 죽이며 듣기에 좋은 배경음악이라 같이 듣고 싶어 놓고 간다.

메리 크리스마스!!


가을방학.jpg


만약이라는 두 글자가 오늘 내 맘을 무너뜨렸어


어쩜 우린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어 그렇지 않니?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우습지만 예전엔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도 많이 하게 돼



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냐


수없이 많은 나날들 속을


반짝이고 있어 항상 고마웠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


그렇지만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너 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었어


마음 둘 곳이라곤 없는 이 세상 속에



https://youtu.be/pq6Xwpfk98I?si=iAqha105KpQoCgLF






브런치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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