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 도씨 ➀

뿌리에 관하여

by 도씨

사실 나는 도씨가 아니다. 그렇다고 온도를 뜻하는 몇 도씨의 도씨도 아니다.

이것은 엄마에 대한 지독한 집착에서 시작해 애틋한 마음 몇 도씨를 섞은 단어이다.


필명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면 내 진부한 집안사정을 풀어내야 한다.


어려서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이미지는 항상 우산을 든 사람이었다.

행여 하교길에 비 한 방울이라도 맞을 새라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오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마저도 금이야 옥이야 젖지 않도록 자신의 등에 나를 들쳐업고 이고 지고, 거기에 우산을 들고 젖은 운동장 흙 조금도 신발에 묻히지 않게 하려고 뛰던 아버지의 호흡과 웃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어린 마음에도 그 기억은 매우 소중했는지 어른이 된지 한참인 지금도 생각을 하면 받았던 사랑이 애틋해 용서의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엄마는 또 어땠나, 김 한 장도 허투루 먹이기 싫어 매번 까만 생김을 사다 구워 참기름을 발라 차곡차곡 잘라 넣어둔다. 그리고 아침마다 그 김에 밥을 말아 먹였다. 비교적 가난했지만 내 양갈래 머리는 엄마의 손이 닿아 항상 이마가 당길 정도로 야무지게 묶여있고 깔끔했다.


비오는 날의 아버지와 그저 사랑이었던 어머니는 나에게는 뭐든 항상 아낌이 없었다.

동생이 있었어도 미안하지만 우리집 금과 옥은 첫째딸이 나였단 걸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아버지의 이미지가 무너 진 것은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다.

우리 집이 타이타닉처럼 서서히 전복된 것은 주로 선장인 아버지의 탓이었다.

사업실패, 사업실패, 사업실패, 사업실패, 그리고 사업실패.


아버지라는 사람은 끊임없는 실패로 어머니의 골수까지 빨아 먹으려는 듯이 다 뽑아내어 먹어치웠다.

집은 작아져 4인 가족이 옥탑방에서 사는 지경까지 흘러갔다.


아버지의 사업 시작은...그것은 어떤 병증같은 것이었다. 엄마는 끊임없이 도와주고도 누구는 친정이 잘 살아 사업을 도와준단 소리를 들어가며 결국 신용불량자. 아버지란 사람 역시 신용불량자.


신용불량자 낙인이 찍히자, 집의 가구들에 빨간딱지가 붙은 채로 사는건 일도 아니었다.

어느 날 나는 빨간딱지가 너무 나를 째려보듯 위압감이 느껴져 그 위에 노란 포스트잇을 붙였다.

어떻게 가구들이 다 안 팔린진 모르겠으나, 그 가구들은 그래도 옥탑방까지 다 따라왔다.

엄마 덕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와중에 내 책상에는 빨간딱지 흔적도 없었던 걸 보면 그것도 짓밟으러 온 사람들에게 무언가 빌었을 엄마가 선해서 내 눈가가 빨개지는 것이었다.


그 뒤론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은 했으나, 살긴 같이 사는 이상한 형태의 동거를 네 가족이 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병증이 끊임없자 엄마는 결국 집을 나갔다.


그런데도 엄마는 지긋지긋한 아버지의 나쁜 피를 받은 우리는 버리지 못했다. 차에서 먹고 자고, 식당일을 나가며 버텼다고 했다. 그 차 안에서 엄마는 무엇을 꿈꾸긴 했을까, 아니 아마 꿈꾸기보다는 버티는 하루들이었을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아버지 옆에 우연히 남게된 건 나였다. 갈 곳이 없어서 주저앉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나쁜 피가 온통 내 몸에 흐른다는 걸 어려서 몰랐단게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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