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대학을 휴학하고 일년간의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반년, 엄마의 도움으로 반년으로 어학연수 1년을 다녀왔다. 새로웠던 환경과 그래도 공부가 조금 되어 알아듣게 된 외국어의 힘으로, 나는 청춘이었고 자신감과 희망이 넘쳐 흘렀다.
과거의 나를 회상하며 동생은 자주
“언니 그 때 반짝반짝 거렸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어?”
라고 안타까워하며 말하곤 한다.
내 인생 중에 가장 예쁘고 밝고 찬란했던 때를 꼽으라면 그 때 일 것이다.
하지만 극복한 줄 알았던 나쁜 피는 이미 온 몸에 흐르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아버지란 사람 곁에 머물면서 동화되고 썩어갔다.
곰팡이 핀 귤 하나가 있으면 귤 상자까지 곰팡이로 물들어가는 것처럼.
나는 다를 거라며 떨쳐내려 뒹굴수록 함께 물러 터져 썩어갔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그 다음엔 동생이 대학교 앞에서 자취한다며 집을 나갔다.
돈도 없고 젊기만 했던 나는 일단은 갈 곳이 없어 옥탑 방에서 다세대 주택의 작은 방으로 이사를 간 아버지를 쫓아가 살았다.
엄마는 그 때를 이야기하면 그 때 고시원 가기 싫어 거기 산다는 너를 끌고 나와서라도 밖에 살게 하거나, 같이 살았어야 한다고 미안해하고 후회했다.
어학연수만 다녀오면 엄마 일은 다 끝날 줄 알았는데 그 때 왜 너는 ‘주저앉았’냐고 궁금해 하기도 했지만 난 더 속상할까봐 입을 꾹 닫았다.
결론적으로 이사 한 뒤에도 조금은 믿었던 아버지는 보증금을 다 까먹도록 그 집 월세도 내지 않았다고 했다. 단 한 번도.
전기세와 수도세 또한 내지 않아 끊기기 일쑤였는데.
전기가 끊긴 깜깜한 방에서 , 씻으려 물을 틀었다가 황당해져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면 엄마가 그것도 내주어 나는 그래도 아버지가 월세는 내고 있겠거니 그 정도 책임감은 당연히 있을 거라, 안일하게 믿었단 게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현관을 부서지도록 치는 소리가 들렸다.
집주인 부부였다. 나는 오랜 시간 빨간딱지를 통해 배운 가난으로 인해, 큰소리가 나자마나 방문을 걸어 잠갔다. 아버지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까지 돈 안내도 참아줄 줄 알았어! 나가라고 했잖아!!!”
“지하에 사는 할아버지도 폐지를 주워 월세는 내, 이사람아!!”
"조용히 기다려주니 이럴줄은 몰랐지??!! 집주인인 우리도 새벽부터 밤까지 식당일 해서 돈 벌어!!"
라고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수치심.
알고는 있었다. 가난하려면 수치심에는 익숙해져야 한다는 걸.
하지만 어떻게 해도 익숙해지진 않았다.
“딸도 있어. 딸도 나오라고 해!!”
란 말과 방문이 쾅쾅 울리자, 다 컸을 나이인데도 무서워 방구석에 숨어 떨었다.
“아파요, 딸은 아파요.”
라고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는 아버지 말에 임기응변은 좋네..란 생각을 하는 동시에 배신감, 분노, 한심함이 뱃속에서 올라와 가슴속에서 몰아쳤다.
눈물이 없는 편이라 눈물은 역시 나지 않았다.
그리고 대충 짐을 싸 그 사이 대학교를 그만두고 직장생활을 지방에서 시작한 동생에게로 도망쳤다.
등 뒤로 쾅!
가난한 이들의 집 앞에 달린 얇은 철문이 닫혔다.
아버지는 나를 그냥 보냈다.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나도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캐리어 하나를 들고 아무 말 없이 도망쳤다.
그 후로 다시는 아버지란 사람을 보지 않았다.
그 때 이미 알고 있었다.
변명조차 없이 도망치는 딸을 내보내는 저 사람을 영원히 미워하며 뒤돌아보지 않을 거란 걸.
그리고 그 날부터였다.
도망가자라는 어느 가수의 노래가 내 주제곡 같아진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