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첫사랑으로부터

by 도씨


비가 와서 길게 걸은 오늘이었어.

집 앞 횡단보도 건너편, 그 신호등 바로 옆에 네가 서 있더라.

분명히 너였어.


눈이 나빠져서인지, 날씨가 흐려서인지 너를 만난거야.

처음은 놀란 마음에 심장부터 덜컥 내려앉았어.

마음이 그 안에 있어서 움직이는 거였다면 아마 우습게도 발끝까지 내려앉았을거야.


나도 모르게 빤히 바라보다가 신호가 바뀌고 나서야 네가 아님을 알게되더라.


곧은 자세의 긴 목과 작은 얼굴, 남자인데도 그 특유의 새침한 인상과 사뿐하게 걷는 걸음걸이


머리로는 아닌 걸 알면서도 내게 네가 다시 걸어오는 것 같더라.

몇 년 되는 연애기간 중의 두번째 데이트였을까 세번째 데이트였을까

그 날도 네가 내게 기타를 메고 걸어왔잖아

가만히 서 있는 내게 웃으면서도 항상 그렇듯 갸우뚱 내 표정을 살피면서..


잘지냈어? 오랜만이야.


그 말이 꼭 하고 싶었는데 내려앉은 심장을 주워담느라

가까이 올수록 타인인 그 사람을 그만 쳐다봐야지 라며 고개를 돌리느라

너무 바빴어


헤어지면 친구로 남는 경우도 많다던데 우리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전할 수 없는 안부와 인사를 보내


너는 한번도 누구랑 닮았단 말을 들은 적이 없댔잖아

그래서 오늘 닮은 사람을 봤어라고도 시시콜콜하게 말하고 싶었어


그런데 이미 그런 말도 전하기엔 낯선 사이가 되었네


비 오는 날을 유독 좋아하는 나와 비오는 날을 유독 싫어하는 네가 어떻게 그렇게 오래만났을까

생각이 나서 걸었던 거였는지

비가 와서 걸었던 거였는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이미 빨간 불이라 길을 건너지 못하게 되어버렸어


너도 가끔은 닮은 나를 볼까


모든 궁금증에도 너에겐 답을 들을 수 없지


나만 이렇게 애틋한 기억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아마 너는 지워버리고 도려내버리고 싶지 않을까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것도 미안하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

나와는 그런 결말이 없었고,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로 인해 이렇게 가끔 추억을 먹고 살아


그걸로 되었어

여전한 위로가 되어줘서 고마워 아니다. 미안해


잘 지내

닿지 않는 말은 여기까지.

이만 줄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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