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피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작은 집에서로부터 , 도망치고나서도 나는 계속 도망을 다녔다.
물리적으로 떨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계속 도망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생이 스스로 마련한 작은 원룸에서 제비새끼들처럼 모여 살았다. 동생과 동생친구와 나라는 청춘의 가난이 만들어 낸 관계가 새로 생긴 것이다.
동생이 어렵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들어낸 이 든든하고 작은 둥지 안에서 날개를 펴고 오래오래 잘 살았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이십대의 약 5년 간을 동생에게 기대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성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때 내 마음 속에는 그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요절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근데 차마 죽지는 못했다.
죽는 것도 야무지게 해내지 못했다.
언제나 나에게 엄마의 희망, 엄마의 꿈이라고 부르던 우리 엄마는 어느새 부턴가 나를 평생의 애물단지, 큰 딸 정도로만 부르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해 키워놓고도 큰 딸이 그 모양이니, 나는 자주 죄책감과 수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적응되었다. 점점 더 집 밖을 나가지 않고, 가끔의 단기알바로 연명을 하면서 지냈다. 그마저도 서른이 가까워지자 잘 구해지지 않았다.
다행이자 불행인 것은 남자친구라는 존재가 있었단 것이었다.
현실도피와 애정결핍을 채울 유일한 관계가 되기 시작했고, 5년간 친구도 다 끊기는 와중에 내 곁에 , 내 수중에, 내 마음에 남은 유일한 것이 남자친구와의 연애뿐이었다.
한달에 일주일에서 열흘은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와, 남자친구의 원룸에서 도망쳐 살았다.
정말이지 되돌아볼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 수치스러운 5년이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은둔형 외톨이고, 그것이 우울증이었단 변명을 하고 싶지만
주변 사람들의 무조건 적인 사랑과 지지에 숨어 살았단 게 회고를 통해 얻어낸 답이다.
엄마와 동생과 남자친구의 사랑과 돈의 뒤편에 숨어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뒤돌아볼수록 내가 나에게서 그냥 도망치고 싶었단 말만 나온다.
우산을 들고 기다리던 아버지의 이미지는 이미 오래된 사진처럼 누렇게 변색되어 색이 바래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작은 집 골방에 누워 로또용지에 둘러싸인 모습, 담배를 하염없이 피우던 모습. 연을 끊고도 길가에 무단으로 차가 버려졌는데 행방을 모르냐는 전화나 경찰에서 오게 만드는 ...그런 사람.
거울을 볼수록, 거울을 다시 닦아서 볼수록 더 뚜렷해졌다.
내게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골방에 누워있는 것도, 자신의 인생을 엄마에게 기대는 책임감 없는 태도도, 무엇을 해야지해야지란 병증만 있을 뿐 결국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의지없음도...
모든 것이 아버지와 닮아있었다. 맘에 들지 않는 눈,코,입과 피부까지도.
그런 느낌이 체감될 때마다 엄마의 성인 도씨가 되고 싶었다.
나쁜 피를 다 뽑아내고 엄마의 피로 가득채운다면 다시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부족했다. 몸 안의 피가 온통 아빠였다.
심지어 내 탓이 아니라 남의 탓 하는 이 태도마저도.
여러 사건 끝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더 확실해졌다.
완전한 엄마의 딸로 살아가고 싶다는 것, 더 이상 아빠 생각으로 내 삶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말이다.
성본 변경이라는 법적인 방법이 있었으나, 내 인생이 손 쓸 수 없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 삶에 엄마의 성을 붙이기는 싫었다.
그렇게 필명을 이름조차 없는 도씨로만 정하기로 했다.
제발 글을 쓰는 내일의 나는 다시 좀 반짝반짝해지라고.
더 이상 그 무엇에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해내보라고.
그것이 비록 엄마가 준 진짜 성이 아니더라도.
더 이상 멈추지 말고, 불행한 삶을 버텨 쓰고 또 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