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엄마는 자식새끼 키우듯 화분을 키웠다. 뭐든 키울 때마다 말라 죽이는 내 손과는 다르게, 엄마의 손을 거친 화분들은 언제나 파릇했다. 애지중지 기른 티를 너무나 뽐내면서.
아파서 내내 누워 보던 유튜브 속에 등장하는 다육이용 화분들을 보는 족족 전화번호를 적어 연락하여 사들이곤 했다. 이미 베란다에는 다육이를 심어놓은 화분들이 가득했는데도 말이다.
얼마나 더 키우려고 그렇게 사들이냐고 면박이나 주던 내 말을 들은 것인지 아닌지, 남기고 간 물건 중 가장 많은 물건이 너무나 작고 귀여운 다육이용 빈 화분들이었다. 내 면박 때문에 동생에게만 미리 귀띔을 했다면서 내온 박스에는 다육이 화분만 한 가득이었다. 흙을 담지도, 다육이를 더 심지도 못해 텅 빈 채로 박스에 쌓인 화분들을 처음 보고, 작은 화분들의 귀여움에 헛웃음을 짓다 눈물이 왈칵 나왔다.
좀 더 살아서 더 많이 심고 싶었겠지, 한 박스 가득한 그 화분들도 다 채워 넣어 기르고 싶었겠지, 아픈 와중의 유일한 낙이 화분을 사들여 박스에 나 보기 전에 숨기는 일이었겠지..
가끔은 그 박스를 열어서 몇 번씩이나 만져보면서 언제 심을 수 있을까 가늠해 보는 게 하루일과였겠지.. 왜 살갑게 봐주지 못하고 아픈 엄마에게 차갑게 면박이나 주었을까.
베란다에 가득했던 다육이 동생들은 내 사람 동생의 시댁 어른들이 버리기 아깝다며 가지고 가 기르시기로 했고 대부분 잘 자라고 있다.
남아서 처치 곤란했던 건 커다란 화분들이었는데 이들 역시 고스란히 제부의 회사에 남아 자란다.
그저 깜깜하기만 한 근황들로 속 타는 내 맘과 다르게 푸릇하고 풍성 하다못해 미친 듯이 잘 자라고 있다.
그것들 다 엄마의 유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지하여서 햇빛도 물도 잘 안 주는데 꼭 우리 엄마처럼 악바리같이 살아서 악착같이 산다. 엄마를 닮았다, 들.
조만간 더 이상 미친년 머리카락 같아 보이지 않게 화분집에 가서 사진 보여주고 잘 동여매어 예쁘게 자라게 해야지.. 무얼 하건 어딜가건 무슨 일을 하게 되건 간에 야무지게 해내고만 살던 엄마.. 두 딸 때문에 그렇게 억척스럽게 되었을 거다. 그러다 못내 지친 마음들이 쌓여 암이 되었었을까. 그 지친 마음에 내가 매우 한몫을 했지.. 화분들 보며 그런 저런 생각을 했다.
깜깜한 지하 공간에서도 살아남는 지독하게 푸른 화분들아, 엄마처럼 죽진 말자. 내가 더 잘할게.
보고 싶은 엄마는 지금쯤 어디로 갔을까. 다시는 좋아하던 꽃으로도 다육이로도 태어나지 말고 하늘에서 한 자리하면서 다 잊고 훨훨 날아다니길. 야밤에 화분사진을 보다 눈물을 짜낸다.
그래 나는 힘들다. 힘들고 힘들다. 그래도 너는 악착같이 미친 듯 살아내라고 저렇게 아득바득 용기를 주는 걸까.
나는 사는 게 제일 힘들어 엄마. 생존이 뭘까? 마음은 죽어도 아직은 나이가 파릇파릇해서... 그래서 사는 것? 그래 죽지는 말자,
화분아.
도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