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은 지은 지 30년이 되어가는 아파트에서 사신다. 아파트가 오래된 만큼 단지 안의 나무들도 오래되어 봄이 되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엄마는 거동이 불편한 외할머니를 차에 모시고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았고, 할머니는 “멀리 벚꽃 축제를 찾아가는 것보다 낫다.”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평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파트 단지를 지나갈 때마다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당시에는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후에는 기억을 꺼내는 의외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포르투갈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는 앞치마다. 볼량시장에서 수탉이 그려진 앞치마를 샀었다. 여행지에서 앞치마를 입으면 하기 싫은 부엌일도 즐거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샀는데 부엌일은 여전히 하기 싫다. 대신 앞치마를 보면 포르투의 길거리가 머릿속에 펼쳐진다.
도착 첫날,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파란 하늘 아래 다닥다닥 붙은 폭이 좁은 유럽식 건물이 짠 나타나는데 ‘내가 유럽에 왔구나.’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하지만 눈물 흘리고 있을 새가 없다. 숙소에서 짐을 풀다 보니, 세안제가 없어서 세안제를 사러 나가야 한다. 필요한 걸 살 겸 근처 구경할 겸 다니다가 볼량 시장으로 들어갔다.
웃고 있는 여인이 반겨주는 아줄레주(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타일)가 있는 볼량시장, 여기도 먹을 것도 많고 사람도 많다. 그런데 살 것은 그다지 없다. 생선도, 과일도, 채소도 팔고 있는데 손님의 대부분인 관광객은 생선 한 마리나 호박 한 덩이를 사기보다는 기념품 가게에 몰려있다. 왕군과 나도 세안제 따위는 잊고 기념품 가게에서 앞치마를 샀다.
그래서 이 앞치마를 보면 볼량 시장이, 똑같은 앞치마를 더 싸게 팔던 상 벤투역 근처의 무시무시한 경사로가, 긴 비탈길의 끝에 나오는 도우루 강과 에펠이 만든 철제 다리인 동 루이스 1세 다리와 다리 위에서 강물로 다이빙을 하던 동네 꼬마들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가 인상 깊지 않은 무엇 때문일까?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일까?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를 먼저 봤기 때문일까? 포르투갈에 대해 전혀 공부하지 않고 떠나서일까? 여행 전부터 주위 사람들의 추천을 많이 받은 포르투는 이상하리만치 무미건조하다.
작가 조앤 K. 롤링이 포르투에서 영어강사를 하는 동안 해리포터 소설을 집필할 영감을 받았다는 렐루 서점, 1920년대에 문을 연 마제스틱 카페, 호텔 인테리어 그대로 햄버거 매장이 된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에 샹들리에가 있는 맥도날드 매장, 상 벤투 역 벽면을 가득 채운 초대형 아줄레주들 등 볼거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식빵 사이에 고기, 햄, 소시지, 치즈 등을 가득 넣고 그 위에 반숙 달걀과 뜨거운 치즈, 맥주와 토마토를 기본으로 한 소스를 끼얹고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 프란세지냐를 먹은 기억, 프란세지냐를 먹다가 세 번 헛구역질을 하여 왕군이 약국에서 한국의 3배 가격을 내고 임신테스트기를 사 온 기억, 화장품 가게에서 산 세안제에 포르투갈어만 가득하고 영어가 전혀 쓰여 있지 않아서 영어를 남발하는 우리나라 제품들과 비교되었던 기억, 눈썹 칼을 챙겨 오지 않아서 점점 아마존 밀림이 되어가는 눈썹을 가리키며 “눈썹용 칼을 사고 싶어.”라고 했으나 “눈썹을 어떻게 칼로 밀어? 무섭게…….” 라며 경악하며 쳐다보던 점원, 그러면서 “나는 이걸로 뽑아.”라고 눈썹용 족집게를 내밀던 점원을 “눈썹을 어떻게 족집게로 뽑아? 아프게…….”라고 기이하게 쳐다봤던 기억 등 소소한 추억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왜 포르투가 무미건조하게 느껴질까?
포르투갈에 대해서 전혀 공부를 하지 않고 갔기 때문일까 싶기도 하지만, 기원전 8세기 로마인들이 이곳에 마을을 만들며 항구라는 뜻의 포르투스(Portus)라고 불렀던 데서 포르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것, 그리고 포르투라는 지명에서 포르투갈이라는 국가명이 유래했다는 것 등을 미리 알았던들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진 않다.
문제는 나한테 있다. 포르투가 무미건조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무미건조한 것이다. 처음 도착한 날에는 눈물 날 정도로 좋았던 폭이 좁은 낡은 건물들을, ‘저 내부가 엄청 후져 보여. 이 더운 날씨에 저런 데서 어떻게 지내냐.’ 하며 바라보는 마음,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축구공을 차면서 노는 아이들을 보며 ‘역시 호날두의 나라라 아이들이 축구를 하며 노는구나. 그런데 이런 주택가에서 축구하다가 유리 깨면 어쩌려고. 축구할 데가 없어서 여기서 하나?’ 하는 내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마음이 건조하니 본래대로 보지도, 본래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그저 희뿌옇게 포르투를 기억하는 것이다.
포르투에 다시 가게 될 기회가 있을까? 내 눈으로 요리한 포르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포르투를 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