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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요정 김혜준 Jul 16. 2021

키친과 친해지기

마흔 살에 생긴 첫 나의 키친 이야기



김혜준 컴퍼니라는 나의 회사는 푸드 콘텐츠, 레스토랑 브랜딩을 주 업무로 삼고 있다. 1인 기업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이자 프리랜서이자 책을 쓰고 기사를 쓰는 일을 위해 키친보다는 책상이 더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한 달의 반은 해외 출장으로 채워졌던 업무 일정이 Covid-19로 인해 2020년 한 해 꼬박 재택이나 업무 미팅으로 변화되었다. 활동력을 받쳐주지 못하는 현실은 우울감을 가져왔고 마침 급격한 스트레스로 인한 당뇨 판정을 받았다.


유전적 요인보다 스트레스가 주원인이었기에 바로 강력한 식단 조절과 스트레스 요인을 하나하나 정리해나갔다. 그나마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학부 전공이 가정관리학이었던지라 식단 조절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니, 머리는 쉬웠지만 받아들이는 몸은 힘들었다. 무탄, 무염으로 시작해 저탄, 저염으로 3개월 바짝 관리해 수치를 훅 내렸다.


하지만 당뇨는 이제 평생 함께 가는 친구처럼 계속 보아주고 관리해줘야 하는 질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당뇨식단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따로-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사무실에 방문하신 엄마는

커튼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치수를 재셨다. 하지만 엄마의 패브릭 선정에 대한 감각을 믿지 못하는 딸의 반대로(심지어 동대문에 갈 시간이 없어) IKEA에서 긴 린넨 커튼을 사다가  길이 재단만 해주셨다.


그렇다. 햇살이 잘 드는 창을 가지고 있다.

자본에 기반한 환경에 대한 욕망은 이렇게 조금씩 실현된다.

이곳에서 독서실 같던 공용 사무실의 밀폐감을  번에 날려 버리는 그런 청량한 4계절을 보냈다. 햇살을 맞이하고 바람의 결을 느끼고 빗방울을 만지고 차가운 눈을 만났다.




채 정리도 되기 전, 이사 다음날 BK가 와서 사무실 선물로 커피를 한 아름 안겨주고 갔다. 내가 사용하는 작은 아로마 보이에 맞추어 그라인더도 잡아주고 변변히 앉을 의자도 없었던 곳에 친구라고 제일 먼저 방문해 주었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마시고

귀하게 아끼던 생보 이차도 우려 마셨다.

이게 뭐라고 아찔한 쾌감과 억만장자가 된 듯한 만족감이 드는지.


난 참 쉽다.



특별히 키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갈 구체적 계획은 없었다. 우선은 공간과 친해지는 것이 급선무였다. 시작은 당뇨식단을 위한 최소한의 조리 도구와 공간 활용부터 진행되었다. 앞으로 1년 동안 4계절 내내 한국에서 나는 식재료를 손으로 만지며 지내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나는 하루에도 외부 미팅이나 업무로 한강을 3-4번은 오가는 일정을 소화해내는 자영업자로 이미지가 굳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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