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두려움과 각자도생各自圖生

by 김동순


리더는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성장합니다

단, 두려움에 대한 처방이

곤궁困窮한 자신을 위로하려는 도피逃避이어서는 안 됩니다



가끔 지나가는 듯하다, 한두 달쯤 일상(사업이든, 일이든)이 꼬이고 형편이 안 좋은 상태가 되면, 서서히 그림자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두려움입니다. 나와 내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걱정입니다. 안절부절, 무감각, 무기력 등등 익숙하지 않은 증상 때문에 벗어나고 싶은 불안이 길어집니다.


두려움에 당신은 ‘모두 남의 일 같은’ 무감각無感覺, ‘뭘 그런 것 갖고 그래’라는 무대응無對應, ‘내가 해결할 건 아니야’라는 무기력無氣力을 보입니다. 관계와 소통이 사라져버리는 3무無입니다. 당신은 이 3무의 와중에도 무시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다 나의 잘못은 아니라고, 다른 사람들을 탓합니다. 이전에도 지금도 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나에게 왜 이런 대접을 하느냐고, 그들이 없는 곳에서 사정없이 공격합니다. 공격하고 공격하면서 본인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지만, 정작 그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의 모습, 잘하고 있다는 당신의 모습을 쳐다보는 그들은 “그건 당신의 생각일 뿐, 그 모습은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그들의 센 반격입니다.


변하지 않으면, 더 잘하지 않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당신은 수없이 말했지만, 정작 당신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미 옛것이 되어버린 당신의 그것들을 아직도 절대 가치인 양 계속 직원들에게 들이대고, 지금의 이치에 적합하지 않은 부적절한 참견을 시시콜콜하지는 않습니까? 당신이 옳다고 화를 낼수록 그들이 외면하는 이유입니다.


두려움에 또, 당신은 안절부절못합니다. 이것저것 되는 일이 없는 청년이 이불 속에 누워 그냥 잠이나 자자는 도피 행동처럼, 나이를 많이 먹은 당신도 행동의 도피처를 찾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 두리번두리번 뭔가를 찾습니다. 마뜩한 것이 없다가 제법 체면을 차릴 만한 것들이 몇 가지 눈에 들어옵니다. 최근 언론에 소개되는 인문학 서적이나, 수십 년간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는 불후의 고전들, 인생의 풍미를 더 한다는 나 홀로 또는 동반자와 여행, 큰 의미는 없지만, 나만의 쏠쏠한 재미를 보는 취미 활동과 같은 것이 눈과 귀에 들어옵니다. 이제 나도 웬만큼 살았고, 더 늙기 전에 해봐야겠다는 의도이자 안절부절에서 탈출하기 위한 저항의 소심한 선택입니다.


앞을 보고 내달리던 청년 시대를 지난 지금쯤 독서와 여행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은 당연하고 대견한 것입니다. 다만, 이런 선택이 두려움을 잠시 속이기 위한 것이라면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예술이란 것이 삶에 대한 두려움, 시간과 공간에 대해 놀라움으로 정제된 것입니다. 역사의 그들과 함께 숨을 쉬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다만, 책을 펴서 글을 읽고 있음에도, 역사의 현장을 지나고 있음에도, 두려움을 버리지 못하고,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자신을 속이는 가짜이고, 현실에서의 도피입니다. 이런 일탈이 반복되면 사회 적응 장애가 될 것입니다.


두려움에 또, 당신은 무리를 짓습니다. 나만 이런 게 아닐 거야,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는 없을까를 생각하며 연대감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접근합니다. 슬쩍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한 지 의중을 떠보거나, 두려움에 빠진 것을 스스로 소문내어 ‘무리’를 찾습니다. 그렇게 서로 기대고, 공격성을 높일 수 있는 무리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런 연대감이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겠습니까? 편을 가르는 잣대만 더 강해지고, 배타적인 자기 보호의 욕구만 더 강해집니다. 그 연대한 모임이 끝난 늦은 저녁, 홀로된 당신은 더 큰 상실감에 빠집니다. 그 무리의 ‘우리끼리’엔 처지를 이해하고 가엾게 여기는 동정同情이 있었으나, 자신을 돌이켜보는 반성反省, Self-Searching이 없었습니다. 주인공이 되려 했지만, 반성과 변화가 없는 그들을 주인공처럼 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미 와버린 두려운 미래에 저항하는 세 가지 모습을 보았습니다. 3무無와 안절부절, 무리 짓기라는 현상들이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그럭저럭 경험의 터널을 벗어나면 나름대로 해답을 찾고, 진정될 것입니다만, 지금부터 솔루션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각자도생各自圖生입니다.


어려운 상황은 함께 풀어야 지혜로운 대처입니다만, 그래도 자기 노력이 먼저일 것입니다. 나의 가치가 없으면, 나도 없고 남도 없으니, 관계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등대처럼 내가 빛이 나야 그들이 나를 찾아옵니다. 말할 수 없이 힘들고 힘들어도 버티고 버텨야 합니다. 며칠을 버티다 보면 보입니다. 나의 업業에서 가장 중요하기에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할 것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분노를 가라앉히면서, 그 에너지를 이 복잡한 모든 상황을 단순하게 조율하는 데 그대로 사용하기 바랍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천천히 바뀌니 조급할 필요 없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자신을 탓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안 해도 될 걱정은 하나씩 지워버리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방도가 없는 것은 한 달이든 석 달이든 그냥 뒤로 미루십시오. 어차피 할 수 없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정말 속상하겠지만, 이렇게 치워버리고 남은 일에 당신의 내공을 집중하십시오.


이런 과정 역시 두려울 것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두렵기에, 두려움은 결국 나와 함께 끝까지 가는 것이기에, 나의 선택은 두려움의 성질을 바꾸는 시도입니다. 이기심과 이타심이 혼재된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둘째, 주인공이 더 낫습니다.


자신의 무대에서 조연이 아닌 주연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남들이 뭐라 하든 주인공처럼! 이라도 행동하십시오,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속상한 마음을 감추고 미소를 보이십시오. 당신이 늘 있는 그곳을 청결하게 하십시오, 하나, 또 하나, 하나씩 일을 정확히 처리하십시오. 옷을 깔끔히 입으십시오. 하루의 식사는 거르지 마십시오. 잘 시간에 자고, 깰 시간에 깨십시오. 당신은 주인공이 되는 법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당신은 곧 주인공이 됩니다.


셋째, 신독愼獨, 혼자 있을 때를 더욱 삼가라 - 大學과 中庸이 답答입니다.


두려움을 한 뼘 손안에 놓아 다스리고, 각자도생과 주인공의 입장을 굳게 하는 것에 신독만 한 것이 없습니다. 왜 내가 이것을 하려는가, 그 의지가 실하고 튼튼하다면 나에게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집중한 관심사를 이타심(타인을 위한 善)으로 성심껏 도모해가면, 어떠한 두려움도 해결의 실마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타심이 없기에 두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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