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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알아서 할 테니 따라와

by 김동순


“나를 따르라!” 얼마나 멋진 말인가?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면...

나도 이 말을 하고 싶고, 이 말이 듣고 싶다

아니, 말이 아닌 ‘센 울림’을 느끼고 싶다



[첫 번째 장면] “이렇게 합시다!” 리더는 정말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곤란한 상황에 부닥쳐 모두가 난감해할 때까지 기다리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껴두었던 이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머리부터 마무리까지 논리 정연한 프로세스를 순식간 정확하게 짚어줍니다. 놀란 표정의 참석자들은 감탄(?)합니다.


해결의 명확한 “방향”이 주효했습니다. 방향이 잡히자 참석자들 각자의 머릿속에는 이미 경험한 해결책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넘쳐났습니다. 이 당당한 리더 덕분에 의미 있는 반전反轉이 순식간에 일어났고 참석자들은 모두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에 대해 리더는 혼자서 며칠간 고민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를 냉정하게 정리하여 3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했고, 각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진단하고, 그중 선택된 한 가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를 준비했습니다. ‘좋은 말’로 ‘이게 맞는 방향이니 되든 안 되든 해보자’가 아니라, 해결을 통해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거나 꼭 해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장면] “일단 이렇게 가 봅시다!” 사실 리더인 자신도 곤란합니다. 그러나, 참석자들 모두 의기소침하여 난감해하고 있는데, 그가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말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툭 터진 것이 바로 이 말입니다. 그나마 이 말 때문인지 분위기는 좀 진정되어 보입니다. 리더가 이 말이라도 던진 것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참석자들은 오늘도 역시 눈치를 보고, 몇몇은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를 소심하게 말했지만, 대부분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리더가 내가 책임질 테니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내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라고 했다면, 어떻게 해보기라도 할 텐데, 리더 역시 아직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 답답한 상황이라 리더가 더 답답해 보이고 무능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오늘 리더인 그가 이렇게 가 보자고 합니다. 조심스럽습니다. 불안합니다. 그렇지만 무슨 방법이, 어디 믿는 구석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할 일을 받아 적었습니다.


리더인 나도 답이 없는데, 계속 이런 상황을 반복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이러든 저러든 결론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의 중에 그럴듯한 아이디어도 제시하지 못하는 참석자들을 보며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감정을 눌렀습니다. 화를 낸다고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책임지겠다는 뻔한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도 나를 못 믿는데 차마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나도 그 말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피할 수 없고,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해버렸기에 한번 해볼 것입니다.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도 생깁니다. 긍정의 힘?


[세 번째 장면] “군소리 말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이러다 나중엔 사장에게 내가 문책을 당하는 뭔가 큰일이 나겠다고 생각한 리더의 짜증 섞인 명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리더인 그는 몇 번의 회의를 거치면서 항상 회의(?)란 명분으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했습니다. 그의 의견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언제나 애매했습니다. 누구나 ‘말은 맞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맞는 말인데, 현실적으로 매우 곤란한 일을 심하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맞는 말은 내가 했으니, 거기에 딱 맞도록 너희들이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것인데, 그게 가능하다면 애초에 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 이 리더의 그런 대책은 너무 뻔히 속이 보입니다. 상대방이든 우리 회사든 분명히 비효율적이고, 심지어 손해를 초래하는 일인데도 끝까지 고집스럽게 요구합니다. 그 자신이 어떤 위험에 빠지지 않고, 불이익을 받는 상황을 피하겠다는 뻔뻔한 의도입니다. 자신만 살아남기 위해 참석자인 부하 직원이나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립니다. 물론 똑똑한(?) 참석자는 역시 머리를 굴려 적당히 빠져나갈 틈을 찾아냅니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발을 빼는 방법을 터득한 것입니다. 순진한 사람만 다치고, 그가 요구한 경위서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유 없는 에너지의 낭비이고, 불신만 증폭됩니다.


리더인 나는 흥분했습니다. 날 우습게 보는 것인가? 내 명령과 지시를 거부한다는 것인가? 가뜩이나 요즘 내가 코너에 몰려있는데, 이러다 내가 큰일 나겠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답은 없고. 그래서 쏘아붙였습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내가 책임진다. (이미 핑곗거리는 다 준비되어 있다) 만약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고과 때 보자. 그냥 안 두겠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렇게까지 했겠습니까? 참석자들 기분도 맞춰주고, 나름 정보도 챙겨서 도움이 되도록 했고, 이런저런 의견을 내기도 하고, 의견을 모아 뒤집어 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상사에게 찾아가 정확한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물러나 줄 수 있는지 재차 확인까지 했습니다. 그런 공갈 협박이 얼마나 치사하고 가소로운지 내가 모르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해.” 아무리 자신감이 넘쳐도, 본인의 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말은 하면 안 됩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고, 동기부여를 심하게 깨뜨리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은 어린애들의 철없는 골목대장이 쓰는 말이지 회사의 대장Captain이 할 말이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기 전, 화가 난(나려는) 상태라면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십시오. 그러면서 참석자들을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리더인 당신만 쳐다보고 있는 그들에게 단호하게 의견(또는 명령)을 전달할 준비가 필요합니다. 일방적이지 않고, 가능한 그들의 입장에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전달을 시작하십시오.


그런 말을 시작했다면, 참석자들의 눈을 쳐다보기 바랍니다. 흔들리고 있는지, 딴 곳을 보고 있는지, 순간적으로 확인하십시오. 리더인 당신의 눈 역시 불안감 없이 그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당신의 말은 전달되었고 참석자들과 미팅은 종료되었습니다. 남은 한 가지 일은 리더인 당신의 상사에게 이러한 분위기와 당신이 내린 결론을 보고해야 합니다. 당연히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요청해야 하고, 어쩌면 상사의 따끔한 질책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라는 말을 ‘하기 전, 할 때, 하고 나서’의

3단계 타이밍에 좋은 거름망을 잘 통과할 수 있다면,

고집과 불통의 리더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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