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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달걀이 먼저? 닭이 먼저?

by 김동순


‘다툰다고 얽힌 일이 풀릴까?

일이 터지기 전에 미리미리 만났어야.’



서로가 지금 원하는 게 다릅니다. “당신이 먼저 양보하면, 내가 할게” 입니다. 사업으로 보면 금전적 손해를 보기 싫다는 것이고, 회사 일로 보면 하기 싫거나, 해야 할 일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심산입니다. 만나고 이야기해서 풀자는 정도로 순진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한쪽이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선 누구도 먼저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서,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한 편은 판매하는 쪽이고, 상대는 개발과 제조를 하는 회사라고 합시다. 기본적으로 판매가 잘 되면 두 회사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회사는 고객의 지갑을 열 수 있는 특별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제품을 개발제조회사에 요구할 것입니다. 고객의 요구사항은 이미 기본이고, 결론은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 가지고는 안 된다고 수없이 회의했는데 반응이 시원치 않으니 답답하단 말입니다. 막상 다른 파트너를 찾으려 해도 역시 쉬운 일이 아니기에 계속 강하게 요구를 합니다.


개발생산회사의 입장은? 아니! 자기들이 못 팔아서 그렇지, 이 제품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다른 제품과 비교해서 더 잘난 것도 없지만 못한 것도 아니잖아? 문제는 영업인데, 납품 값도 제대로 쳐주지 않으면서, 주문도 많이 늘리지 않으면서 자꾸 뭘 해 달라고만 하는 거야? 예전에도 그랬지만 개발한다고 개발비를 제대로 주는 것도 아니고, 실컷 시간 들여, 돈 들여 만들어 놓으니 팔지도 못하면서. 이제부터는, 확실하게 주문량 정하고, 가격도 제대로 해 준다는 보장 없이는 절대 거래 안 할 거야.


두 회사가 돈 벌고 싶은 생각은 하나인데, 이러다 보면 두 회사 모두 망할 수 있습니다. 뭐라도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얼굴 붉히면서 따지고 들지 않지만, 사업이 쪼그라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서로에 대한 믿음에 문제가 생겨버렸습니다. 어느 쪽도 분명 손해 보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니, 어지간해서 합의점을 찾아 협력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한쪽이 손해(?)를 보면서라도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서로에게 떠넘깁니다. 이런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파악해야 하고, 이 문제를 풀 실마리는 무엇일까요?


우선, 서로가 사업을 길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곧 망할 것 같으니까)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양보는 하지 않고, 사업을 짧게 보는 (거래를 포기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길다고 해서 그렇게 장기적인 것은 아니고, 한 이년 정도, 길면 삼 년쯤 보고 논의를 시작합니다. 사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함께 노력해서 상품이 시장에 나가고, 그 효과가 드러날 때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 동안은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 없이 더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힘든 시기이니까.


그다음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사업이니까 뭘 개발해서 생산하고 판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겠지요. 이 비용을 나누어야 합니다. 시작하기 전에 프로세스를 만들고 거기에 맞춘 소요 비용을 예상하고 공평하고 깔끔하게 배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좀 불편한 마음이 들더라도 사전에 충분히 논의해서 결정해야 괜히 쓸데없는 마음고생, 분쟁을 차단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일이 착수되면, 기왕 하기로 한 것이니 열심히 해서 기간을 최대한 단축합니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비용이 많이 들고, 갈등이 발생할 확률은 높아집니다. 기간이 줄수록 리스크는 줄어듭니다. 협업하지만, 이해가 상충할 수 있는 사항을 분명히 정하고, 담당할 역할을 명확히 해서, 수시로 체크하며 진행해야 합니다.


사업적인 것 말고, 조직 내에서도 당신이 먼저 하면 내가 하겠다는 상황은 벌어집니다. 역시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놀이터의 아이들과 같은 소동이 생깁니다. 하긴 해야 하는데, 부서와 부서, 부서 내 개인과 개인이 서로 미루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럴 땐, 당연히 그 일의 진행 프로세스에서 가장 먼저 시작할 일을 맡은 사람이 치고 나아가야 하겠지요. 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업이 있는 경우에는 그 일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 맞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그런데 똑같이 시작할 수도 있고, 시간도 비슷하게 걸린다면? 그럴 땐 선임이 후임보다 먼저 진행하도록 합니다. 그만큼 이 일에 대한 진지함을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동 사업을 하는 여러 회사 간, 부서와 부서, 개인과 개인 관계에서 위와 같이 합의하고 착수되면 반드시 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례적인, 주기적인, Steering & Wrap-Up 미팅이 꼭 필요합니다. 협력의 룰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달걀이 먼저? 닭이 먼저?

(닭이 먼저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 영국 셰필드 대학교 재료공학과 콜먼 프리먼 교수팀의 실험)

닭인지, 달걀인지 경영자가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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