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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개비꽃 Aug 15. 2023

마늘이 여무는 계절

                            

  따뜻한 햇볕이 대지에 내리쬔다. 오뉴월이면 마트나 길거리 가게마다 마늘  더미가 쌓여 있다. 지난 해 가을에 파종해서 올 초여름에 수확한 것들이다. 마늘 알이 통통하고 녹색 잎줄기는 흰색으로 잘 건조돼 살림꾼 여인들이 모여 있다. 하지만 나는 마늘 더미를 볼 때마다 좋은 걸 골라 사둬야겠다는 생각보다 가시 같은 것이 마음을 찌르는 듯 약간의 통증을 느낀다. 사방은 따스한 공기로 활기찬데 서늘한 바람이 나를 수십 년 전 교실 안으로 데려간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지방의 남자 사립학교 영어 교사로 채용됐다. 양호 선생님 외에 학과 여선생님은 두세 명뿐이었다. 말하자면 여교사 채용을 시험해보는 케이스인 것 같았다. 그러니 얼마나 의욕이 넘쳤겠는가. 한 학년이 10반까지 있고, 한 반 학생 수가 60∽70명이나 돼 은근히 경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험 성적, 운동 시합, 합창 대회 등 교내에서 벌이는 이런 저런 대회에 우승하고 싶었다. 환경 정리 심사일이 다가오면 늦게까지 학생들과 남아서 닦고 꾸미곤 했다. 

 다만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기성회비라는 이름의 수업료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고 사립학교는 수업료에 의지해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교무실엔 수업료 상황판이 그려져 있고 교감선생님은 매일 각 반의 미납자 수를 붉은 분필로 표시했다. 마감일이 다가오는데 우리 반 숫자는 두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언제라도 교감선생님이 나를 불러낼 것만 같아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이러한 감정은 우리 반 종례 시간으로 이어졌다. 종례는 짧을수록 좋은 법, 학생들은 공부가 끝나면 홀가분하게 귀가하고 싶은데 이들의 발목을 잡곤 했다. 미납자를 남으라 하고 한 명씩 불러내 납부할 약속 날짜를 내 수첩에 적었다. 그 날짜를 어기면 이유가 뭔지 또 적었다. 낼 돈이 없는데 이유를 따지는 게 타당하기나 한 짓이었나. 마땅찮은 일이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찬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름을 부르면 무슨 큰 죄나 저지른 사람처럼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한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두리번거리거나 아예 내리깐다. 얼굴은 좀 누런빛을 띠지만 달덩이같이 둥글고 두 눈 아래 주근깨가 몇 개 나 있는 게 귀엽다. 검은 눈동자가 포도송이처럼 크고 영롱하다. 수업 시간, 맨 앞줄에 앉은 찬이의 눈빛은 초롱초롱하다. 성적도 전체 상위권, 성격도 원만해서 한마디로 모범생이다.

 어쩔 수 없다. 나는 그에게 수업료를 언제까지 낼 수 있냐고 묻는다. 그는 엄마가 마늘을 팔아서 주신다고 했다고 대답한다. 얼마 후 나는 또 묻는다. 왜 약속을 어겼느냐고. 찬이가 풀이 꺾여 어깨를 앞으로 모으면서 대답한다. “엄마가 아직 마늘을 팔지 못 해서요…” 순간 걱정이 앞선다. 자식 수업료를 마련하려고 온 힘을 쓰다가 몸에 병이 나지 않았나 싶어서다. 나는 가늘게 한숨을 쉬고 찬이는 고개를 더 숙인다.   

 찬이는 도시 외곽에 살면서 통학했다. 그해 초여름엔 뜻하지 않은 비가 자주 내렸다. 그래서 마늘 수확이 늦었다. 수확한 마늘은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되는 곳에 세워 건조시켜야 상품성 있는 마늘을 얻을 수 있는데 시기를 놓친 것 같았다. 언젠가 남해 바닷가를 지나면서 햇빛과 바람으로 건조 시키느라 마늘을 꾸러미로 묶어 놓은 풍경을 보며 찬이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되돌아본다. 수업료를 잘 받아 내는 게 유능한 교사는 아닐진대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학생들을 다그쳤을까. 종례가 끝난 후에도 미납자로 남아 친구들이 다 알게 됐으니 얼마나 자존심 상했을까. 학생은 그렇다 치더라도 부모의 심정은 하루하루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 

 찬이엄마를 한 번 뵌 적이 있다. 처음 담임을 맡은 뒤 가정방문 때였다.  엄마는 밭에서 일하다 말고 급히 달려와 이십대 애송이 선생을 반갑게 맞이했다. 우리 아들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연신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말하는 모습이 품격 있는 여인 같았다. 대문을 나설 땐 정성스레 싸놓은 달걀 꾸러미를 손에 쥐어줬다. 

 찬이엄마가 마늘을 팔지 못해 애가 탔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좀 더 찬이를 다독여주고 감싸 안아줄 걸 그랬다. 적어도 왜 약속을 어겼느냐는 두 번째 질문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 서툰 방법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좋은 길이 있었을 텐데…. 오히려 상황판에 무관심한 듯 의연하게 처신했다면 젊은 여선생이 더 노련하다는 평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쯤 찬이는 사회생활을 하고 가정을 이뤄 자녀가 대학생이거나 결혼했을 수 있겠다. 그의 어머니도 살아계실 수 있겠다. 그때의 기억이 상처로 남아 있지 않길 바란다. 비록 나에겐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지만.  

 해마다 늦봄이 지나고 오뉴월 마늘이 여무는 계절이 오면 내마음속에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스쳐간다. 통통 여문 마늘 알 위에 포도송이 같은 찬이의 두 눈동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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