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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피 Aug 30. 2021

월말에 왜 그렇게 무리하세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직장문화 (3)

인간은 성장한다. 성장하는 재미로 산다. 투자를 하는 사람은 돈이 불어나는 재미에 살고 운동을 하는 사람은 몸이 좋아지는 재미에 산다. 학생들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밤늦게까지 책과 씨름하고 여행자는 더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기꺼이 움직인다. 어제는 갖지 못했던 것을 오늘은 가질 수 있고 어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오늘은 할 수 있다. 


기업도 성장한다. 성장해야 한다.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주가는 성장률에 의해 좌우된다. 회사를 키우고 더 많은 돈을 벌게 하는 것은 경영진의 숙명이다. 매년 연말이 되면 각 사업부에서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짠다. 내년도 매출과 이익목표를 세우고 달성 방안을 고민한다. 몇% 성장할지가 핵심이다. 적절한 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아니 욕심만 버리면 꽤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속한 FMCG(Fast Moving Consumer Goods – 소비재)의 경우 보통 월별로 실적을 마감한다. 그러다 보니 월말 매출 쏠림이 심한 문화가 있다. FMCG업계의 병폐인 소위 ‘밀어내기’다. 월 매출을 맞추기 위해 크게 할인을 하거나 무리한 조건으로 판매를 한다. 마감을 하기 위해 거래처에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된다. 


‘밀어내기’를 하게 되면 이런저런 후과가 따르게 된다. 싸게 판매한 만큼 수익이 줄고 많이 판매한 만큼 다음 달 판매가 힘들어진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구매하는 입장에서도 월말까지 기다린 다음에 아주 유리한 조건으로 구매한다. 정상적인 판매는 불가능해진다. 


한번에 많은 양을 판매하는 만큼 생산에서도 문제가 된다. 비정상적인 물량을 맞추기 위해 월말에 공장을 풀가동하게 된다. 월초에는 일이 없어서 쉬어야 한다. 정상적인 공장 운영이 어려워진다. 매출이 극단적으로 들쑥날쑥해지면 수요를 예측하는 것이 마치 주가를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된다.


이러한 밀어내기는 때때로 있어서는 안 될 갑을관계의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물건을 계속해서 공급받고자 하는 대리점은 대기업의 무리한 밀어 넣기에 속수무책이다. 2013년 남양유업 직원의 폭언 녹취록이 공개됐다. 을이었던 대리점이 물건을 받기 힘들다고 하자 갑이었던 대기업 직원의 폭언이 시작됐다. 어쩌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팔아야 하는 영업사원과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물건을 강매당하는 대리점주 모두 을이었을 것이다. 기업문화가 잘못됐다. 해당 기업은 히트한 브랜드들이 꽤 있음에도 소비자의 마음을 잃었다. 불매운동이 확산됐다.


남양유업은 밀어내기 및 폭언으로 대리점주와 소비자의 등을 돌렸다.


매출은 영업활동 그 자체가 아니다. 영업활동의 결과일 뿐이다.
무리한 목표는 모두를 힘들게 한다.


한편 이렇게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는 높으신 분들 또한 그저 사람이다. 전보다는 성장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무리하게 된다. 폭풍 성장하는 경쟁사를 보며 마음이 급해졌을 수도 있고 높은 목표를 잡아놔야 그나마 어느 정도 성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까라면 까라는 식의, 아직은 수직적인 문화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하면 된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옛사람들에게 불가능은 없었으니까. 


일개 마케터의 입장에서 보면 왜 이런 결정을 아무렇지 않게 내리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물론 도전적인 목표가 회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리한 목표는 밀어내기를 만든다. 밀어내기는 브랜드를 망친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들어 놓고 1+1 행사를 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 한 번 고삐를 푸는 순간 그 브랜드는 더 이상 프리미엄이기 힘들다.


브랜드는 생명체다. 소비자와의 유대감을 형성한다. 광고 천재 데이비드 오길비는 지속된 가격 할인 정책이 소비자가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저해요소라고 말했다. 매우 공감한다. 소비자는 똑똑해서 본인이 산 가격을 준거로 삼는다. 정가는 정가일 뿐. 그래서 나는 할인을 하지 않는 콧대 높은 브랜드들이 좋다. 젠틀몬스터는 절대 할인이 없다. 내가 지금 구매해도 손해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사람들은 애플의 할인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저 뭐라도 나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성취 가능한 목표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고민하자


적정한 수준의 성장 목표를 잡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사실 모르겠다. 이 글은 쓴 이유도 사실 잘 모르겠어서이다. 누군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왜 그렇게 밀어내면서까지, 브랜드 자산을 훼손하면서까지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가 말이다. 이 모든 부작용을 알고 있으면서 무리하게 성장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 내가 있는 곳보다 훨씬 높은 곳에 앉아계시는 분들이 내가 지금 하는 단순한 생각을 하지 못할 리가 없을 텐데. 단순히 목표를 높게 잡아 성장하는 것보다는 내실을 탄탄히 하고 브랜드 자산을 키우는 노력을 하는 게 어떨까. 무리한 목표보다는 소비자에 좀 더 초점을 맞춰서 기업을 운영해보면 어떨까. 애플이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밀어내기를 잘해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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