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싸이피 Aug 24. 2021

실패의 추억

경험이 중요한 이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성공의 어머니는 왜 그렇게 욕을 먹는지 모르겠다. 


"거 봐,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 


이 얼마나 쉬운 말인가. 도전하라고 하면서 도전이 실패로 끝나면 사람들은 도전한 사람을 비웃는다. 사업부 내 공모전에 실패에 대한 상을 주자고 건의한 적이 있다. 실패에 대한 사내 인식을 바꾸고 싶었고 도전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황당하지만 해당 공모전은 코로나19로 인해 흐지부지 되어 아무도 수상을 하지 못했다. 아무튼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찾아보니 많은 회사에서 실패에 대한 상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실패의 추억이 꽤 있다. 그중에서도 마케터로서 처음으로 신제품을 개발하여 론칭했던 사례를 공유하고자 한다. 참고로 나는 FMCG(Fast Moving Consumer Goods) 소비재 업종에서 일한다. 속도가 매우 빠르고 매년 신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신제품을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는 것은 FMCG 마케터의 주요 업무다.


마케터가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당시, 내가 맡고 있던 품목에서 새로운 브랜드로 신제품을 개발하여 시장에 출시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다. 시장에 대해서는 꽤 알고 있었지만 NPD(New Product Development) 프로세스나 내부 절차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맨땅에 헤딩까지는 아니었다. 이미 많은 경험이 있는, 프로페셔널한 제품 디자이너와 제조사, 협업부서 그리고 나의 팀장님까지 나의 일을 오히려 주도하면서 도와줬다. 게다가 당시 사업부장님은 실무자 선에서 기획한 것들에 대해 큰 문제가 없다면 믿고 결재해주시는 아주 훌륭한 분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제품과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중간에 문제가 생겨도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보면 쉽게 해결되곤 했다. 기존에 해왔던 방식과는 다르게 마케팅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색다른 포지셔닝을 제안했다. 영업부에서는 유통채널이나 가격전략 측면에서 걱정했으나 나는 이 새로운 방식이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었다. 힘들고 정신없기는 했지만 보람찬 하루하루였다. 


아... 큰일 났다...


잘못된 것을 직감한 때는 이미 본 제품의 초도물량이 생산된 후였다. 몇 만개가 창고에 이미 쌓여있었다. 실제로 제품을 받아보니 모니터나 인쇄물로 볼 때와는 사뭇 달랐다. 프리미엄 라인이었음에도 제품이 왜소하고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일정에 쫓겨 목업(mock-up, 실제 제품은 아니지만 디자인이나 형태를 실물로 확인하기 위해 만든 샘플)을 만들어 보지 않은 것이 패착이었다.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팀장님도 처음 실물을 보고는 꽤나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영업부에 어떻게 설명할지, 소비자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됐다. 


이렇게 왜소한 제품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과대포장을 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설득해나가기 시작했다. 이 논리는 잘 먹히지 않았다. 일부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대부분은 성공하지 못했다. 적어도 론칭 초기에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지는 못했다. 시장 특성상 왜소한 제품이 눈에 띄기는 힘들었다. 뼈아픈 실패였다. 


돌이켜보면 의미 있는 실패였다. 이후 신제품을 개발할 때는 목업을 만들어 실제 진열을 해보는 등 좀 더 다방면에서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물의 최종 이미지를 상상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름 새로운 시도였던 만큼 경쟁사들도 우리 신제품의 단점을 보완하여 비슷한 신제품을 내기 시작했다.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은 어느 정도 맞았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많은 실패를 하고 있다. 젊은 마케터의 특권이다. 실패에 대한 대가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성공한다면 그저 좋겠지만 실패를 하면 경험치를 얻는다. 이 경험치는 자양분이 되어 내 레벨을 높여준다. 가끔 부장님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젊을 때 아무 문제없이 순탄하게 일한 것을 후회한다. 많은 실패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능력 있는 상사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조언도 많이 저질러보고 많이 실패해보라는 것이다. 

실패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도전하자. 성공하면 좋고 실패하면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생활의 장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