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돌아온 시간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서던 첫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다섯 번의 수술 자국이 남은 배는 여전히 묵직했고, 항암의 흔적은 발바닥 끝에 미세한 저림으로 남아 있었다.
처음 달리기를 시도했을 때 내가 버틴 시간은 고작 3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노래 한 곡도 끝나지 않을 짧은 시간이겠지만, 그 3분은 내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한계였다.
숨이 가빠 멈춰 서서 깨달았다.
내 몸이 다시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려면,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음 날 나는 다시 운동화 끈을 묶었다.
대단한 목표는 없었다.
어제보다 딱 10초만 더 숨을 들여 마시고 싶었을 뿐이다. 병실 침대 위에서 수동적으로 견뎌내던 치료에 비하면, 스스로 선택한 이 숨 가쁨은 오히려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3분은 5분이 되었고, 10분은 20분이 되었다.
느렸지만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
6개월이 다 되어,
어느 날 시계를 보니 1시간이 지나 있었다. 멈추지 않고 채운 육십 분.
그날 나는 길가에 서서 가만히 웃었다.
다시, 내가 알던 나로 돌아왔다는 걸 몸이 먼저 알려주고 있었다.
재발을 걱정하며 다음을 두려워하던 시간 대신, 오늘 하루를 얼마나 건강하게 호흡할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곁을 떠난 사람들의 빈자리는 새벽바람과 길가의 풀꽃이 조용히 채워주었다.
다 잃고 나서야 보인 것은 무너진 흔적이 아니라, 다시 달릴 수 있는 내가 보였다.
혹시 지금 3분조차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나도 그랬다고. 그 3분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다시 숨 쉬는 일상을 만날 수 있었다고.
나는 오늘도 운동화 끈을 조여 맨다.
쉰 살의 봄, 러닝이 나의 일상을 다시 가져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