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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치불고 Oct 18. 2024

마마챠리 전사들

Tokyo Keyword / 자전거 自転車

  도쿄에서 지내게 된 후부터 ‘마마챠리(ママチャリ)’로 불리는 자전거에 특히 눈길이 갔다. 일본어로 ‘엄마 자전거’를 뜻하는 마마챠리는 앞뒤에 장바구니나 어린이를 태울 수 있는 좌석이 장착된 전동 자전거다. 만화 ‘짱구는 못 말려’에서 짱구 엄마 봉미선 씨가 자주 끌고 다니는 그 자전거인데, 봉미선 씨의 자전거가 아날로그 식이라면 요새 전동 마마챠리는 시속 20km 안팎으로, 로드바이크 수준의 속력을 자랑한다.


  바구니가 달린 마마챠리는 기동성 좋고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그래서 일본의 엄마들은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즈음부터 마마챠리를 하나씩 장만한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마트 주변이라면 이 마마챠리 행렬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도쿄에 있는 내내 이 마마챠리를 보면 열등감을 느끼곤 했다.


일본의 한 마트 앞에 세워진 전동 마마챠리. 두 아이를 앞뒤로 태우고 장 본 물건까지 담을 수 있다.


  슬프게도 나는 자전거를 못 탄다. 못 타는 정도가 아니라 자전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일본 생활을 앞두고 마흔이 넘어 자전거에 도전해 보겠다며 연습을 하던 어느 날 낮은 언덕에서 고꾸라졌다. 그날 불행 중 다행으로 커다란 소나무에 부딪혔는데, 그 충격으로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진 송충이 수십 마리와 마주했다. 내가 놀란 만큼 그 송충이들도 꽤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이 ‘송충이 사건’을 목격한 남편은 내게 더 이상 자전거 타 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설상가상 운전도 무서워하는 나는 결국 도쿄의 뚜벅이족이 됐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도쿄의 교통비는 서울보다 훨씬 비싸다. 운영회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도쿄의 버스비는 성인기준 220엔(약 2000원), 전철의 경우 거리에 따라 180엔~330엔에 달한다. 환승할인도 없어서 하루 출퇴근길에 우리 돈 1만 원 정도는 예사로 뿌리게 된다. 무료 주차공간이 흔치 않고 자동차 유지비도 훨씬 많이 들다 보니, 자전거가 특히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실제로 도쿄에는 자전거가 많다. 2017년 통계에 따르면 도쿄에만 840만 대의 자전거가 있다. 도쿄 인구(약 1400만 명)에 거칠게 대입해 보자면 두 명 중 한 명 이상이 자전거를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나 흔한 자전거를 탈 수 없다니. 더없이 친환경적이며 건강에도 이로운, 그 결점 없어 보이는 탈것. 그러나 나는 탈 수 없는 그것.


  도쿄에서 혼자 걷는 것은 큰 어려움이 아니었지만 달린 아이 둘과 함께 걸어야 한다는 게 늘 문제였다. 빠른 걸음으로 집에서 20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학교에 가고 오는 길, 우리는 자주 실랑이를 벌였다. 늘 조심스럽고 매뉴얼을 중시하는, 그래서 때로 답답하게 보였던 일본인들은 자전거를 탈 때 있어서만은 이례적으로 꽤 터프해진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를 무시하며, 헬멧 대신 헤드폰을 끼고 달리는 이들도 적지 않게 봤다. 좁은 길에서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까 걱정되다 보니 내 잔소리도 늘 수밖에 없다. “한 줄로 한 줄로!” “왼쪽으로 바짝 붙어서!” 내 독촉에 종종거리며 따라오는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겨워한다. “엄마, 다리 아파. 택시 타자.” “안 돼. 여기 택시는 정말 비싸!”


  마냥 조심스럽고 여성스러워 보였던 일본 엄마들은 마마챠리를 끌 때면 거침없었다. 마마챠리를 끄는 모습도 인상적인데, 풀 세팅한 헤어와 메이크업에 하늘하늘한 원피스 차림으로 마마챠리를 모는 모습은 특별한 축에 들지도 못한다. 심지어 나는 아기 띠를 맨 채 앞뒤 좌석에 각각 한 명씩 총 세 명의 아이를 태우고 페달을 밟는 엄마도 목격한 적이 있다. 규정상 마마챠리에는 15kg 초과는 태울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이상의 무게를 버티는 마마챠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들은 팔의 움직임이 자유롭도록 판초형 우비를 걸치고 마마챠리를 몬다. 빗속에서 우비를 펄럭이며 언덕을 내려오는 그들에게선 언뜻 전사의 풍모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전사들이 내 앞을 쌩하고 지나갈 때 내 마음은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한 손엔 우산을 들고 다른 손엔 아이를 잡고 나는 그들을 부럽게 바라보곤 했다.  


  습하고 무더웠던 어느 날 오후, 또 몇 대의 자전거가 우리 앞을 아슬아슬 지나갔고, 아이들에게 몇 차례 주의를 준 후 나는 “아 정말, 자전거가 싫어”라며 푸념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우리 집 큰 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흥, 그건 엄마가 자전거를 못 타기 때문이지!”

  그래, 안다. 자전거는 죄가 없다. 그저 나는 자전거가 싫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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