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정말 좋았나요
일드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
랭킹 매기는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연말이면 ‘올해 최고의 유행어’ 같은 것도 뽑는다. 2024년 유행어는 ‘후테호도(ふてほど)’가 선정됐다. 올해 초 일본에서 꽤 인기를 얻은 TBS 드라마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不適切にもほどがある·이하 후테호도)’의 일본식 줄임말이다. 일본 유행어라는데 작금의 한국 상황과도 꽤 잘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지, 구시렁거리며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후테호도’는 일본의 1986년과 2024년을 오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타임슬립물이다. 주인공은 도쿄의 한 중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일하는 중년 남성 오가와. 별명이 ‘지옥의 오가와’인 그는 학생에게 막말은 물론 체벌도 거리낌 없는 전형적인 쇼와시대의 아저씨다. 연호를 쓰는 일본에서 1929년부터 1989년까지에 해당하는 쇼와시대는 현재 생존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가장 오랜 옛날. 쇼와 이후 일본은 ‘헤이세이’(1989~2019년)를 거쳐 2019년부터 ‘레이와’라는 연호를 쓰고 있다.
드라마는 1986년의 아저씨 오가와가 2024년에서 겪는 에피소드와 함께 2024년에서 1986년으로 시간여행을 온 여성학자와 그의 중학생 아들이 겪는 또 다른 에피소드, 크게 두 축으로 나뉘어 펼쳐진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오가와는 요즘의 사람들이 경악할만한 온갖 ‘시대착오적’ 행보를 보인다. 시내버스에서 ‘쩍벌’ 자세로 담배를 피운다거나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여학생에게 “치한에게 당하고 싶냐”라고 소리치는 등 그의 ‘꼰대’같은 모습과 함께 애정표현부터 주먹다짐까지 거침없던 1980년대 청춘의 모습이 이 드라마의 주요 웃음 포인트다.
일본에서는 요 몇 년 사이 ‘쇼와레트로’가 유행이라고 한다. 필름카메라나 카세트테이프 같은 아날로그 아이템들이 다시 각광을 받는 등 1970~80년대 문화가 인기를 끈다. 일각에서는 이런 쇼와레트로가 인기를 끄는 이유로 현재 일본의 젊은이들이 살면서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여유를 동경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 드라마의 인기 역시나 이런 해석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드라마 속 오가와가 자주 피우는 담배가격은 1989년에서 2024년 사이 세배가 됐지만 정작 “알바 시급은 별로 오르지 않았”을 정도로 현재 일본 경제 상황은 과거의 영화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팍팍해진 것은 경제뿐이 아니다. 1980년대의 아저씨 오가와의 기준에서 보면 2024년의 사람들은 별거 아닌 것에도 지나치게 깐깐하게 굴고 뭐든지 조심스러워한다. 오가와의 과감한 ‘꼰대스러움’은 결국 요즘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으로 어필하며 방송사의 고민상담가로 채용되기에 이른다.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드라마 속에서 숨은그림찾기처럼 여러 가지 문화적 코드를 찾는 재미가 있을 듯하다. 다만 개인적으론 자주 팔짱을 끼면서, 몇몇 장면은 다소 갈등하며 봐야 했다. 예컨대 직장 내 갑질 같은 문제를 유약하고 예민한 일부 젊은이들의 문제로 지나치게 단순화시켜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했다. 성적인 농담 수위도 과한 편. 오죽하면 ‘이 작품의 대사는 시대의 변화를 묘사하는 드라마 특성상 1986년 당시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라는 자막이 화면을 덮을 정도다.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질문거리를 많이 준다. 그래서 그 시절이 아름다웠나,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것 같다. 버스에서 담배 피우는 아저씨를 어떻게 견딜 수 있겠냐는 말이다. 그럼에도, 꽤 영리한 드라마라는 것은 확실하다. 1986년의 꼰대가 2024년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불량식품처럼 ‘부적절’한 것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2024년의 ‘정도’를 지켰기 때문이다. ‘후테호도’는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 ‘부적절함’과 ‘정도’가 한국에서 어떻게 재현될지 궁금하다.
사진: 일본 TBS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