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담임을 연이어 하던 시절!
주말까지 반납하며 일을 하고, 방학 때는 보충수업으로 쉼과 충전의 겨를도 없이 개학을 맞곤 했었다.
늘 괜찮지 않은 몸으로 한 해를 시작했고, 그 해를 미처 마무리 못한 채 버거운 다음 한 해를 맞아야 했다.
시간에 끌려 미처 도착하지도 못한 몸을 추스르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위태로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최고의 아이러니는 임신을 했을 때였다.
이 삶이, 이 업무 강도가 과연 내 몸에 괜찮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동안은 늘 '괜찮다' 스스로를 위안하며 당연하듯 받아들이던 일이었기에 그것이 뱃속의 내 아이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내 삶이었지만 내게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은 것만 같은 상황들!
몸이 녹아 내릴 것 같은 극심한 피로가 몰려와도 난 나의 상태를 온전하게 알아채기 힘들었다.
일을 하다 보면 다들 한 번쯤 겪는 일이라 스스로를 위안하고 철저한 관리를 하지 못한 내 자신을 타박하기도 했다
어릴 적 신부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센병 환자 이야기를 해주시며 그들이 코가 없거나 손가락, 발가락을 잃은 비극적인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한센병 환자들은 병원균이 침범해 몸을 망가뜨리는 그 순간까지도 고통을 느끼지 못해 그 상처를 치유할 시기를 놓친단다.
무감각한 상처는 그들의 코를, 손가락을, 발가락을 앗아간다.
상처가 나면 아파야 한다.
아픈 건 고통이지만 이 고통이 결국 그 병을 치료하고 돌보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어린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이 이야기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삶에 영향을 미쳤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할 때 오는 상처와 비극은 때로 돌이키지 못하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한다.
아픔이 왔을 때, 고통이 느껴질 때 이것을 외면하고 무조건 감내하기보다는 그 상처를 직접 바라보고 살피는 것이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진짜 비극과 위험을 막아주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아픔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치유의 필요성도, 상처의 호전도 알 수 있는 법이다.
아픔을 느낀다는 것,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는지 안다는 현실 직시는 때론 상처를 헤집어 놓는 것 같은 고통을 주는 것 같지만 그것이 괜찮은 척, 태연한 척 사는 삶보다는 훨씬 덜 아프고 덜 위험한 일일 것이다.
다른 이들의 고통과 슬픔에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누구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섬세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인 것이다.
늘 함께 하기에 때론 눈치채지 못하는 존재!
누군가의 진심어린 사랑과 위로를 경험한 이는 자신의 컨디션이 나빠졌을 때 금방 알아챌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상처 받아 힘들어할 때 이를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건강하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만 하는 이유다.
나 자신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스스로에 대한 가장 깊은 이해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만 비로소 다른 이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