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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01. 2022

작심삼일과 초지일관

인생이란 그 중간 어디쯤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신문들은 큼지막한 일출 사진과 호랑이 일러스트를 1면에 걸어놓고, 카톡에서는 온갖 기발한 새해인사가 공유됩니다.  달력을 넘기고 다이어리를 바꾸다 보면,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지만 뭔가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요.  아마도 이런 것들 때문에 농업사회를 떠난 지 오래인 지금까지 1년이라는 시간셈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뭔가를 시작할 때 오는 두근거림을 좋아하지만 끝까지 완주할 만한 끈기는 없는 탓에, 계획을 세워 보았자 결국 중간에 그만두고 말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계획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내 삶에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겠구나 하는, 체념 섞인 경험이 몸에 밴 탓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삶의 궤적이 꼭짓점을 지나 내리막길에 접어드는 길목에 선 요즈음, 다시금 이루고자 하는 일들의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꾸준하게 이어가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삼일은 버티겠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데 의미가 있는거지 라는 등 혼잣말을 웅얼거리면서요.  인생의 굵직한 이벤트들은 대충 마무리되었고, 이대로 순항하면 무탈하게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 - 아마 중년의 위기란 이런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 이 들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 인생무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도 일종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사실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와 같은 소수의 개척자들을 제외하면, 우리네 범인들의 인생은 연초에 근사해 보이는 계획을 세우고, 연중 내내 일상의 고단함에 시달리다가 연말에 흐지부지된 계획표를 바라보며 서로를 위로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요.  작심삼일로 그치는 것은 의지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만, 초지일관으로 밀고 나가기에는 귀차니즘과 먹고사니즘의 벽을 도무지 넘을 수 없는.  적어도 제 인생은 그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란 뭔가를 시작하기에 좋은 때임은 분명합니다.  모두들 호랑이 열정으로, 화이팅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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