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1.
폭풍같이 흘러간 3월도 마지막 한 주를 남기고 있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이렇게 보내다보면 아픈 상처의 기억들도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틀을 연이어 아버지가 꿈에 나왔다. 오십을 넘었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땐 ‘아빠’라 불렀다. 어릴 적부터 이 호칭은 우리 집에서 나만 썼고, 엄격한 분이어서 그랬는지 ‘아빠’보다는 ‘아버지’가 더 어울렸다. 이제 나도 일상 속에서 점점 ‘아빠’라는 호칭이 어색해지기 시작한다. 나의 아빠는 영원히 내 인생과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는 상식적 진리치가 가장 가까운 내 주변에도 적용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틀째 꾼 아버지의 꿈은, 괴한이 아버지를 습격해 살해하고 내가 슬프게 우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피부는 약간 붉었고, 랩 같은 것으로 쌓여 있었던지 반질반질 빛이 났다. 아버지를 화장으로 모셨으니, 불 속으로 사위어 간 당신의 마지막 지상의 육신이 환기하는 이미지가 나의 무의식에서 그렇게 발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새벽에 해몽을 찾아보니, 심리적으로 이제야 내가 아버지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2.
얼마 전 혼자 영화 <파묘>를 보았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삶과 죽음의 중간 어디쯤의 세상에서 차마 떠나지 못하는 혼령이 미련을 두지 않도록 일은 일로 끝내고 잊어 버려야 한다는 장례지도사의 말이 귀에 남았다. ‘그동안 열심히 사느라 고생하셨다’라며 정성을 더 들이면 혼령도 이승에 대한 미련을 남긴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때였다. 나는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까지 손을 잡고,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걱정도 하지 말고 편안하게 잘 가시라고 했다. 아버지의 이마에서는 송글송글 땀이 맺혔고, 죽음이란 살아내는 것만큼이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혼령이 되어 병실침상을 둘러싼 우리 가족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마지막으로 하고 떠나셨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내 당신이 편안해하시던 그 집이 아닌, 홀로이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지.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겠구나 생각해본다. 최근 겪은 내 경험 때문인지, <파묘>는 나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을 정리하게 해주었다.
3.
나는 어렸을 적부터 명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핸드폰에 명리학 관련 앱을 깔 정도로 세상과 사물의 이치가 궁금했다. 영화에서는 어마어마한 일본 귀신을 오행의 이치를 활용해서 때려잡는 장면이 나온다. 비가 와서 물에 젖은 묘목은 그 자체로 수생목(水生木)의 이치대로 힘을 얻는다. 마른 흙은 흙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지만, 비(水)를 만나 진토(辰土) 곧 축토(丑土)로 바뀌면 목(木)의 힘을 강하게 할 수 있다. 이때 인목(寅木)으로서 화(火)의 기운을 가진 호안(虎眼)이라는 호를 쓰는 지관 김상덕의 힘과 합을 이루어 더 강한 목의 에너지로 합해지고, 금(金)과 화(火)의 에너지인 일본 귀신을 때려잡는 것이다. 약간의 기본적인 명리학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략 이해되는 장면이다.
영화 <파묘>가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끄는 이유는, 영화 속의 서사를 각자의 서사나 해석으로 풀어낼 수 있는 다양한 원천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공포영화라 무섭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화 속에서 기순애라는 법명으로 활동한 일본인 승려의 정체를 통해 일본이 박아놓은 쇠말뚝 이야기에 주목하며 반일영화라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아니다 하는 결론보다는 그럴 것이라는 추측으로 마무리하는 감독의 센스가 돋보임.) 또는, 나처럼 명리학에 관심 많은 사람들은 사주와 오행을 깊이 있게 다룬 영화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 모든 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라는 차원으로 환원하려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마치 ‘도를 믿으세요?’라고 외치는 무언가에 빠져있는 사람과, 그것을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생각과 색깔을 가진 사람들에 관한 우리들의 이야기로 보는 관점도 가능하고, 다양한 해석들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이 <파묘>가 지닌 인기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숨 막히도록 많은 화면을 가득하게 채우며 사실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그림이 아닌, 뭔가 여백을 남기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있어 숨은 그림처럼 영화 곳곳에서 그런 ‘여백의 여지’들을 찾도록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한 덕목이다. 아무튼, 이렇게 바쁜 가운데에도 이슈가 되고 있다는 <파묘>도 보았다. 이번 주는 여전히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 때문에 엄마에게 자주 못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