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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Oct 04. 2024

봄이 와서 - 첫 번째 이야기

[가을이 1.]

정말 아침마다 힘들어 죽겠어! 봄이는 왜! 자꾸 나랑 같이! 가겠다는 거야? 학교 가는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엄마도 똑같아.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면 내 편을 들어줘야지. 맨날 봄이 편만 들고 있어. 속상해 죽겠어. 으 짜증 나... 나도 친구들이랑 학교 같이 가고 싶다고 몇 번을 말해야 되는 거야 도대체. 아침에 만나서 할 얘기가 얼마나 많은데. 내가 자꾸 동생 데리고 나오니까 친구들이 불편해하잖아. 그래서 나만 얘기에 끼지도 못하고. 그러면 교실 들어가서도 나만 못 끼어든다고. 엄마는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가 돼도 상관없다는 거야 뭐야. 생각할수록 정말 짜증 나. 내일부터는 아침도 안 먹고 나와버릴 거야.

가을이는 아침부터 화가 잔뜩 나서 발에 걸리는 모든 것을 퉁퉁 쳐가면서 등굣길을 걷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엄마가 봄이랑 같이 학교에 가라 하였다. 그런데 봄이는 세월아 네월아 나무늘보보다 더 늦게 늦게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었다. 내 속이 타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봄이를 기다리다 결국 나도 늦어버렸다. 내가 약속시간보다 늦게 집에서 나오니까 친구들은 기다리다 지쳐 먼저 학교에 가버렸다. 엄마는 아침마다 등교할 때 봄이랑 같이 가라 하신다. 하지만 봄이는 학교 갈 준비를 엄청 늦게 한다.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해서 까딱하면 지각할 뻔할 날도 있었다. 그리고 걸음도 엄청 늦게 걸으면서 지나가는 강아지랑 얘기하고 모르는 할머니한테 배꼽인사하고 칭찬받으면 좋아라 하고 도대체 웬 참견이 그렇게 많은지.. 5분 이면 갈 거리를 봄이랑 같이 가면 학교까지 20분도 더 걸린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봄이는 그냥 옆에 조용히 좀 있을 것이지 언니들 얘기하는데 자꾸 끼어들어서 이야기의 흐름을 깬다. 요즘 친구들이랑 중요한 얘기가 얼마나 많은데.. 아.. 작년까지가 딱 좋았는데. 올해는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는지 정말 모르겠다. 나만 쏙 빼놓고 친구들끼리 얘기 시작해 버렸을 텐데 이제 어떡해... 터덜터덜 걸어 계단을 올라 교실로 들어섰다. 역시나 친구들이 모여서 조용조용 뭔가를 얘기하면서 웃는다. 나만 모르는 얘기가 시작됐다.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른다. 나는 책상 옆에 가방을 대충 걸고 양팔을 괴어 그 속에 머리를 파묻었다. 너무 속상한 아침이다.




[봄이 1.]

엄마, 언니는 사춘기가 맞는 것 같아. 아침에 화내는 거 엄마도 봤지? 나는 진짜 어제저녁에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사자가 우리 집으로 뛰어들어온 줄 알았어. 엄마는 어제 설거지하느라 동물의 왕국 못 봤지? 거기서 사자가 으앙~~~ 했거든. 그런데 오늘 아침에 언니가 고개를 숙이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을 쿵쿵하면서 "제발 나 좀 따라오지 마!!!!" 하면서 나한테 엄청 크게 소리쳤잖아. 나 너무 놀라서 쉬야 나올 뻔했어..

 "엄마도 똑같아. 내가 봄이 엄마도 아닌데. 왜 맨날 나보고 학교에 데리고 가래에!!!" 할 때 엄마도 언니 무서웠지?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했던 거지? 휴우... 지금도 가슴이 막 콩콩 뛰는 것 같아. 근데에 엄마랑 같이 학교 가는 거 오랜만이다. 히이. 엄마랑 같이 가니까 너무 좋아. 엄마도 좋아? 진짜?

근데 엄마아.. 언니는 왜 나를 싫어할까?... 나 진짜 속상해.. 나는 언니가 너무 좋은데.. 근데 언니는 나만 보면 따라오지 말래.. 언니는 나를 안 좋아해.. 친구들만 좋아해. 그리고 내가 얘기하려고 하면 언니가 나를 막 째려봐. 나도 언니랑 언니 친구들이랑 같이 얘기하고 싶은데 말을 못 하게 .. 나는 언니랑 언니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면 너무 좋은데... 언니도 예쁘고 언니 친구들도 예쁘고.. 음 그리고 멋져. 히이. 나도 나중에 크면 언니처럼 될 수 있을까?




[엄마 1.]

우리 봄이도 언니처럼 예쁘게 클 거야. 언니가 오늘 아침에 기분이 안 좋았나 봐. 가을이 언니가 학교 다녀와서 "봄아~" 하면서 그림도 그려주고, 인형도 빌려주고 그럴 테니 걱정 말고 우리 봄이 학교 잘 다녀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점심도 꼭꼭 씹어서 잘 먹고. 안녕~


휴우.. 아침부터 정신이 쏙 나갔네.. 동생 좀 데리고 학교에 가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동생인데 아주 말도 못 붙이게 철벽을 치니 이거야 원.. 이렇게 예쁜 동생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닐 때는 언제고... 동생 갖고 싶다는 소원을 엄마가 빨리 들어줘서 감사하다고 배꼽인사하고 뽀뽀하고 공주옷 입고 춤을 추면서 그렇게 좋아하더니만. 친구들이 봄이 한번 보기라도 할라치면 안된다고 가로막아 서면서 무슨 보물단지 챙기듯이 하더니 하루아침에 아주 싹 달라졌어. 180도! 완전 정반대! 이렇게 싹 바뀌어도 되는 거야..

그나저나 한낮이면 따뜻한데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네.. 이러다 갑자기 확 더워지겠지? 준비할 새도 없이 안면 바꾸는 날씨가 꼭 오늘아침 우리 가을이 닮았네.

혹시.. 가을이에게 무슨 다른 일이 있나아?...봄이가 언니 물건에 손을 댔을 리는 없고.. 가을이가 워낙 자기 물건을 아끼니까 봄이가 어려서부터 언니 물건, 봄이 물건 아주 철저하게 구분하잖아. 봄이 말대로 사춘기가 아주 세게 왔나?... 자매전쟁 같은 거 우리 집에는 없는 줄 알았더니, 늦게 시작한 만큼 더 휘몰아치는 건가. 아니지. 전쟁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좀 아니네.. 봄이는 그냥 있는 거고, 가을이 혼자 화를 내고 있으니. 아이고 감기 기운이 있어서 힘들어 죽겠는데, 아침에 가을이가 하도 난리를 쳐서 오르던 열이 싹 식어 버렸네.  감기가 깜짝 놀라서 나중에 올게요 하고 들어가 버렸어 참내.. 환절기라 그런가 체력이 너무 딸려.. 아이코 이럴 때가 아니지. 집에 가서 청소하고 빨래하려면 서둘러야지.. 오늘따라 지긋지긋하네 집안일..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초록담쟁이의 아름다운 날들 사계절 컬러링북을 색연필로 색칠한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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